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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제69주년 학도병의 수기 (2)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06월 24일

↑↑ 송 영 수
학산미예연구원장(안흥면)
ⓒ 횡성뉴스
그러나 이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이라며 두고 온 무거운 중화기를 반드시 가서 회수하여야만 한다. 이와 같은 불가능이 없다는 엄한 군기로 해병정신을 무장되게 하였다.

격전지(激戰地)인 가리산, 투솔산, 대우산, 가칠봉, 일명 김일성고지, 스탈린 고지 등 이름 모를 험한 계곡과 산야(山野) 등에서 밀고 밀리는 공방전으로 발생한 전상자가 수 없이 많았고 곳곳에서 구명(求命)의 비명 소리가 지금도 심금(心琴)을 울린다.

전세는 대대적인 중공군의 공세로 철수한 한·미 해병사단이 방위선을 중동부에 형성하고 있는데, 연일 소극적인 공세에서 갑자기 돌변하여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기습적(奇襲的)으로 공격하였다. 조직적 체제를 갖춘 중공군 60사단 수십만의 대군이 전선에 투입하여 도처에서 격돌하게 되었고, 한·미 해병사단 눈 덮인 동부전선에서도 엄청난 힘으로 공격하여 왔다.

이로 인해 한·미 해병사단이 포위 고립되어 전투는 그야말로 생존을 건 작전이었다. 위기에 처한 아군이 중동부 지역의 험준한 산과 계곡을 빠져 나가는 후퇴를 하는 과정에서 중공군은 교란 장비로 정신을 혼미상태(昏迷狀態)로 빠트리게 하였고, 쉼 틈 없이 공격하는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맹렬한 추격을 감행하는 그들....

또한 아군이 후퇴할 계곡 도로 양쪽 산 아래를 협공(挾攻)을 받으면서 돌파구를 열기 위한 전투는 상상을 초월한 혈전이 거듭 되었다. 결국 15일의 악전고투 끝에 돌파함으로서 귀신 잡는 해병, 무적 해병대의 작전은 성공하였다.

이후 철수한 해병연대는 전선을 다시 중동부에 형성하였고, 전력을 가다듬어 다시 북진에 총 공세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상대는 오랜 전력(戰歷)을 가진 중공군과 잘 숙달된 인민군이 해병연대 전면에 포진되어 힘든 상대였다. 특히 투솔산, 대우산 전투는 우기(雨期)와 뜨거운 염천(炎天)에서 5개월간에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였다.

때로는 전술에 말려 그들이 매설한 지뢰밭에 들어갔다. 이곳은 2중, 3중으로 형성된 포위망 내에서 협공을 받으며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전상자는 더욱 늘어나 해병 연대는 존폐위기(存廢危機)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더욱 전세는 심각하여 후방 해군병력 일부를 해병대로 전역시켜는 등 매달 신병 단기훈련을 필하여 전상자 결원을 보충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키와 덩치만 크지 아직 미성년 철부지 나이었다. 무거운 중화기몸통과 완전무장에 만15세 소년으로서는 힘에 부쳐 감당키 어려웠다. 7,8월 뜨거운 염천(炎天)과 폭설이 쏟아지는 혹한(酷寒) 추위에 낙오됨이 없이 육중(肉重)한 동료들과 같이 행동해야만 했다.

이런 과정에서 어느 날 밤 9시경에 배속된 병사 중 고향 향인 해군18기 경남 통영 봉평동 동장 아들이 본 소속 결원에 보충되어 왔다. 후방과 고향소식을 전하는 향수에 젖은 시간도 잠깐이고, 배속 된지 2시간 후 밤 11시에 투솔산 A지점 탈환작전에 합류하였으나 실전부족으로 익일 새벽 3시경 바로 옆에서 전사하였다. 위급한 상황이라 방어사격을 하면서 한손으로 전사자의 목덜미를 더듬어 군번을 득하여 전역 후 유족에게 군번만 전달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남기게 되었다.

대우산 전투에서는 3소대장의 전상결원 보충으로 고향 동문 정환식 선배가 본 소대 소대장으로 배속되었다. 아직 실전 경험이 없는 견습 장교가 본 전투지 소대장에 부임하여 소대를 진두지휘 하였으나 중공군의 포탄에 변을 당하였다. 배속된 지 단기에 전상으로 들것에 실려 전선을 떠나면서 널 부러진 중공군의 시신을 밟고 넘어가자며 분통으로 후송되면서 결국 중상이자가 되어 한평생 불편한 몸이 되었다.

이 전투는 5개월간 악전고투로 승리의 깃발이 꽂혔으나 엄청난 대가를 치룬 투솔산과 대우산을 해병대의 혈산(血山)으로 이름하였다. 이 혈산을 뒤로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진격 하여 가칠 봉까지 탈환하였으나 이어진 K고지인 일명 김일성고지와 스탈인 고지로 부르는 곳이다. 이 K고지는 방어진이 잘 구축된 북한군의 요새지로 수 차례 대 공격에도 거듭 실패하였다.

이 요새지를 특수공격 목표로 하여 아군 화력을 동원, 초토괴멸 작전으로 전환하였다. 동·서 해상함정의 함포지원과 후방 포병사단의 장거리포, 중진에 주둔한 대전차포, 직사포와 곡사포, 전진 배치된 보병의 중기와 경기, 박격포, 화염방사기, 바주카포, 공군의 공습으로 기총과 폭탄투하 등으로 주야 가릴 틈 없이 초토 괴멸작전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북한군은 굴하지 않고 여전히 항전해 오는 상태였다.

특히 휴전 될 무렵에 동서로 횡단된 긴 전선에서 서로 한 치의 양보 없는 다양한 전술로 쉴 틈 없이 공방전이 계속 이어져 전세는 더욱 치열하여 희생자가 많았다.
<다음호 계속>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0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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