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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164) 『 성숙한 토론문화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1월 25일

↑↑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횡성뉴스
세계 인구 2%로 노벨상 93명을 배출한 유대인의 교육비결은 토론문화였다.

하브루타 자녀교육으로 성경과 탈무드(유대교 율법서)를 가정에서 질문하고 토론하는 학습과정에서 자녀가 스스로 무엇을 정확히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파악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키워 자기주도적 학습을 하는 힘이다.

소통의 가장 중요한 방법은 토론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 타인의 말을 경청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세상에서 누가 가장 힘이 셀까? 득도다조 실도과조(得道多助 失道寡助) 맹자 공손추편에 도(道)에 맞아 경청과 소통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 헤라클레스나 삼손보다 힘이 강하다. 그러나 소통과 토론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도움을 얻기가 어렵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 토론 대신 주장만 넘치고 소통 대신 불통이 만연하고 있다.
토론 부재의 원인을 살펴보자. 인간사회의 이해관계를 영합(zero-sum)게임으로 보는 잘못된 인식이 있다.

어떤 쟁점에 대해 내 생각대로 하면 나에게 유리하고, 상대편 생각대로 하면 내가 불리해진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이는 오로지 경쟁관계로 보는 관점이다. 인간관계란 경쟁하면 한 쪽이 승리하지만 협력하면 양쪽이 다 승리하는 관계로 경쟁과 승리로 얻는 것보다 협력과 공생으로 얻는 것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지나치게 효율성을 추구한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면 빠른 의사결정이 안되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빠른 의사결정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수렴되지 못하여 실질적으로 많은 것을 놓치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긴 토론과정이 다수 성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참여의식을 높이는 측면에서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토론은 소통을 낳고 소통은 화합을 낳는다. 혼자 보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시각과 생각과 판단을 존중할 때 훨씬 더 풍성하고 지혜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토론의 기본은 팩트(fact)이다. 맞는 것은 맞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자기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를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토론이다. 출처가 탄탄한 근거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가 토론의 승패를 좌우한다.

성숙한 토론문화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토론을 위한 기본자세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자세이다.

각자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주장을 하되, 상대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론은 미리 정해놓고 단지 토론이라는 형식을 빌려 윗사람이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거나 아랫사람에게 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부모와 자녀간의 토론문화에서도 수준이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이견(異見)을 다는 것은 불효로 여긴다. 그러나 토론 시 자녀를 동등한 인격체를 가진 상대방으로 간주해야 한다.

수평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물론 적절한 예(禮)를 갖춰 이견을 제시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모든 사회적, 국가적 문제를 토론을 통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토론 만능주의에 사로 잡혀서도 안 된다.

토론을 통해 결정할 문제가 있는 반면 전문가들이 결정할 문제도 있다. 때로는 모든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고뇌에 찬 결단으로 결정할 문제가 있다고 단국대 정복규 교수는 지적한다.

이탈리아의 플레시비토 광장, 시뇨리아 광장, 오스트리아 산 마르코 광장 등이 있다. 과거 유럽은 오늘날 매스컴 언론 TV 등 매체가 없는 시대로서 광장문화가 민주주의 산실이었다. 광장에서 시민들이 토론을 벌이거나 거수로 정사를 결정하며, 의사소통은 물론 각종 재판과 연락사항을 전달하였다.

조선시대의 토론문화는 대단했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논쟁을 벌였던 사단칠정론이 있다. 당시 퇴계는 58세, 기대승은 32세였지만 7년 동안 긴 시간을 토론을 벌였고 두 번이나 이황이 기대승을 찾아가 논쟁을 하였다.

토론은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이다. 토론은 내가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인식하게 되고 인문정신을 구현하게 되는 새로운 힘을 갖게 된다. 한국인의 성숙한 토론문화의 정착을 기대한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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