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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의 미래, 청소년이 희망입니다


김희수(송호대학 평생교육원장) 기자 / 입력 : 2009년 04월 24일
↑↑ 김희수 송호대학 평생교육원장
ⓒ 횡성신문
겨울이 제 꼬리를 말아 올리자 봄은 우리가 모른 사이 성큼 다가와 있었습니다. 며칠 새 따뜻한 기온이 계속되며 세상은 벌써 온통 초록일색입니다. 그렇게도 길었던 겨울의 끝자락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겨울이 제 아무리 몽니를 부려도 봄은 착실히 제 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게지요. 계절은 이렇듯 섭리를 따라 소리 없이 가고 또 옵니다. 우리네 마음 또한 좌절과 시련, 기쁨과 희망의 풀포기들이 나지막히 숨쉬고 있는 겁니다.

19세기의 영국 낭만파 시인 워즈워드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일입니다. 얼핏 듣기엔 그 의미가 아리송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과연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진리가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어른도 한때는 어린이였습니다.

그러한 어른이 또 언젠가는 어른이 될 어린이를 낳는 겁니다. 그리하여 끝없이 대를 이어가는 것이 인간의 역사이기 때문에 워즈워드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그것을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함축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그 ‘어린이’를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는 ‘청소년’이라고 바꾸어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모두는 희망의 에너지를 내재하고 있으므로 그 차이가 없다는 관점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의 청소년이 내일의 어른이 되어 다시 새로운 청소년이 될 어린이를 낳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부터 사람들은 청소년을 ‘내일의 주인공’이라 일컬어 왔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는 ‘그 나라의 청소년을 내게 보여라, 그러면 내가 그 나라의 내일을 말하리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내일의 주인공’이라고 할 때의 그 내일은 오직 인간에게만 부여되는 선물입니다.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 그러니까 동·식물이나 무생물에게도 내일이 없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내일과 인간의 내일은 그 의미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가 갖는 내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어도 저절로 시간이 흘러 당도하게 되는 일종의 자연현상입니다. 인간의 내일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이루기 위한 역동적인 의지의 내일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내일은 계획과 설계, 꿈과 희망이 심연의 기저에 자리합니다.

내일의 주인공인 청소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희망을 안고 있는 세대요, 더 나아가 그 존재 자체가 바로 한 사회의 희망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청소년을 귀중하게 여기고 정성을 다하여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인간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여러 감각이 민감하고 영리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아이도 있고, 수학적 감각이 뛰어난 아이도 있으며, 운동 신경이 유달리 발달한 아이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인생을 배우고 성취감을 얻습니다.

우리는 청소년 개개인의 개성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잠재능력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 자신과 다른 이를 존중하며 어울려 살 수 있는 교육적·사회적 환경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작금의 사회는 어떻습니까.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고 제로섬 게임의 치열한 경쟁사회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야만 된다는 생각을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흔히들 이를 순리라고 말하며, 청소년들에게 순리대로 살아주길 직·간접적으로 강조합니다. 자연이 섭리를 거스르지 않듯, 청소년들도 학업성적이라는 순리의 틀 안에서 열심히 생활해주길 바라는 겁니다.

돌이켜 보면 순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규범 속에 얼마나 많은 편견과 강제가 함께했는지 모릅니다. 학업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암묵적인 무시와 차별을 받고, 자신이 가진 남다른 잠재능력마저 수면 아래로 숨겨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획일적 가치를 강요하는 일은 사회적 집단폭력과 다름없습니다.

청소년 하나 하나의 잠재능력과 특성이 받아들여지고 인정되는 사회가 될 때, 우리 사회의 미래는 진정한 희망이 있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가정, 학교 모두가 작금의 상황에 대하여 깊이 반성하고 성찰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심리적으로 가치관의 갈등과 좌절감, 정서적 양극성과 미래세계에 대한 동경과 불안, 상대적 우월성과 빈곤의식, 그리고 박탈감 등이 교차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저서 ‘데미안(Demian)’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새로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神)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라식스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즉 청소년들의 심리적 갈등과 불안, 고뇌와 고통은 소아(小我)적 자아보다 대아(大我)적 자아 성장을 위한 진통의 과정임을 잘 묘사해주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청소년의 대아(大我)적 자아 성장을 위해 개인이 가진 다양한 능력을 인정해주고, 그 능력이 발휘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따라서 청소년이 타자로부터 부여된 획일화 된 귀속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주체적 존재로서의 긍정적 자아의식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학업성적에 국한하여 청소년의 존재 가치가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는 학생의 본분이므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대학 입시를 위한 학과 공부만으로 한정시켜서는 곤란하다는 겁니다.

지역사회와 학교는 학생의 소질을 개발할 다양한 특기와 적성 교육, 학습 우수자와 부진아에게 적용될 알맞은 심화·보충교육, 진로교육, 체험교육 등을 균형 있게 다뤄 소외자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 출산율이 현저히 감소되고 있는 횡성의 경우, 청소년 하나하나는 더욱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래의 횡성 발전은 이들 청소년과 곧바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들꽃의 마음으로 어떤 대상을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연말이면 학교마다 앞 다투어 내거는 명문대 합격자를 위한 축하 현수막, 또 아이의 수학능력과 적성은 아랑곳 없이 사교육의 현장으로 내모는 현상들 말입니다. 최고를 지향하는 이면에는 늘 그렇듯이 소외, 물화, 공허, 매몰 등의 수식어가 붙기도 합니다. 즉 어떤 아이는 교육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지울 수 없는 마음속의 그늘과 깊은 상처가 돋아나기도 합니다.

공부 잘하게 하는 교육도 사회적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자신의 잠재능력과 소질을 개발할 기회가 부여돼야 합니다. 그래서 훗날 횡성에 대한 깊은 애향심과 함께, 각자의 분야에서 유일한 사람이 되어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지역사회는 청소년 문화센터라든가 쉼터 등의 문화공간 확충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고, 또 다양한 청소년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청소년들의 건전한 문화 형성과 자기계발을 적극 도와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미래 횡성의 꿈과 희망이라는 가능태를 싹틔우는 최상의 질료이기 때문입니다.
1천여 종의 발명특허로 세계의 발명왕이라 불리는 토마스 에디슨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습니다. 그것은 집안이 가난한데다, 그 자신 또한 학교에서 학업능력이 열등한 아이로 낙인되어 늘 꾸중과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훗날 그가 이룩한 업적은 전 인류의 문명생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놀라운 공헌이었습니다. 학과 공부의 성적, 그것만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유일 절대의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에디슨은 말해주는 겁니다.

끝으로,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가 언급한 ‘그 나라의 청소년을 내게 보여라, 그러면 내가 그 나라의 내일을 말하리라’는 문구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워즈워드의 시 ‘무지개’를 맺음말로 대신할까 합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적엔
언제나 이 가슴 두근거리네
나의 삶이 시작한 그때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다네
내 몸이 늙어서도 그러할지니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리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내 삶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경건으로 맺어지도다.

김희수 송호대학 평생교육원장
·시인 /평론가 ·본지 객원 논설·컬럼위원
김희수(송호대학 평생교육원장) 기자 / 입력 : 2009년 0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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