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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횡성 바로 알기 ③

성이 없는 횡천이 횡성이 된 까닭
김승기(횡성문학회장) 기자 / 입력 : 2009년 05월 15일
↑↑ 김승기 횡성문학회장
ⓒ 횡성신문
굳이 따진다면 덕고산성(德高山城=태기산성)이 있으니 성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지만, 횡성에서 다른 곳처럼 성이라 불릴만한 자취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간혹 향토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횡성의 유래가 된 성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답하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답은 물론 “횡성에는 성이 없다”이다, 즉, 횡성이란 명칭은 특정한 성(城)을 염두에 두고 연관 지어 지은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사매, 황천, 횡천 모두 은하수와 연관된 아름다운 의미를 지녔다고 이야기 한바 있다. 그러나 횡성이란 이름은 은하수와 거리가 멀다. 다만 안 좋은 추억이 있을 뿐이다.

1454년(단종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十四年 甲午 以橫川 洪川同韻 故稱橫城…’이라하였으니,‘태종14년(갑오년)에 횡천과 홍천의 음이 비슷하여 횡성으로 고치고…’ 쯤으로 해석된다.

즉 두 고을 이름이 비슷하여 헷갈리니 하나를 고치자는 행정편의적 발상(?)에 희생되어 졸지에 ‘은하수가 강처럼 흐르는 땅’에서 ‘빗겨서 성을 쌓은 곳’이 된 셈이니, 자존심 상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사실대로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논해보았다.

그렇다면 600여 년 전 횡성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세종실록지리지란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 〈횡성현〉
현감 1인이다. [경계]동쪽 - 강릉 50리, 원주 - 서남쪽 서쪽 23리, 남쪽 9리, 북쪽 - 홍천 29리이다. 가구는 313호, 인구는 595명, 군속 97명으로, 인물은 고려 고종 때 문하시랑평장사 문정공 조충이 있다.
땅이 메마르며 기후가 차다. 간전은 2737결이며, 논은 10분의 1로 약하다.

토산품은 오곡·뽕나무·삼·배·닥나무·옻 등이며, 곡물은 꿀·잣·오배자·주토·느타리·석이버섯·지초·자단향·백단향·여우·살쾡이 가죽·토끼·시우쇠 등이며, 약재는 오미자·인삼·복령·쥐꼬리망초뿌리·승검초뿌리·바디나무 뿌리·연밥·백교향·대왕 풀·담비쓸개 이다.
유적으로는 현의 동북쪽 45리 50보에 덕고산 석성이 있는데 568보 5척이고 마르지 않는 내와 군창 5칸, 관청2칸이 있다.
또한 역은 오원·안흥·갈풍·창봉 등 4개의 역이 있다.

※ 당시 안흥지역은 강릉대도호부 관할이었음.

김승기 / 횡성문학회장
·횡성군청 청정환경사업소장
·본지 객원 논설·컬럼위원
김승기(횡성문학회장) 기자 / 입력 : 2009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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