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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천주교의 전래


고명규(21세기정책연구소장) 기자 / 입력 : 2009년 11월 15일
↑↑ 21세기정책연구소 고명규 소장
ⓒ 횡성신문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평신도들이 세운 교회이므로 자발적인 교리 연구를 거쳐 1784년에 이승훈이 북경에서 입교 후 서울에서 동료들에게 세례를 주고 모임을 가짐으로서 평신도들로 교회공동체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200여년이 넘었고, 그동안에 수많은 세월 속에 박해를 받아오면서 모진 목숨을 바치고 강원도에 정착하게 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경기도 용인에서 살고 있는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40여명의 신자들이 모여 8일 동안을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지금의 풍서원이 되겠습니다.

그후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온 신자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모진 박해를 이겨낼 수 있는 굳센 신앙을 보존해 왔는데, 이곳에서 직접 순교자가 난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신앙을 길러왔고, 많은 신자들이 지금의 원주 감영이 있는 곳으로 붙잡혀 가서 순교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와 1871년 신미양요 때 많은 신자들이 계속 찾아들어 신앙촌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일부는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농경시대라 농업에 종사하면서 특히 농업용수와 식수가 모자라 풍서원을 풍수원으로 개칭을 하여 논농사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성직자 없이 80여년간을 지내오던 중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1888년 6월20일 조선교규장 뮈델주교는 안변에서 전교 활동을 하던 파리 외방선교회 르메르 신부를 풍수원에 파견하여 강원도 최초의 본당을 창설하고 초대 신부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르메르 신부는 춘천·화천·양구·홍천·원주·양평 등 12개 시·군을 관할하였으며 당시 신자수는 2000여명이 되었고, 초가집 20여칸을 성당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후 1896년 8월17일자로 강원도 세 번째 본당인 원주로 부임하였고, 2대 정규하 신부가 부임하여 1930년 3월20일자로 정규화 신부에 의해 횡성본당으로 분리되었습니다.성당은 정 신부가 1500여 만원을 들여 동서남 3면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대에 위치한 대지를 포함한 건물을 매입하였습니다.

현 중림동 본당 보좌이던 양덕환 안드레아 신부가 초대주임으로 부임하여 맞이한 성탄축일 때는 신자수만 400여명이라고 말하고, 횡성을 기점으로 공소는 모두 17개였다고 합니다.

양덕환 신부는 현재의 사제관 터에 있던 초가집을 매입하여 이 건물에 공민학교를 설립하였고, 지역의 가난과 무지를 추방하고자 4년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고명규(21세기정책연구소장) 기자 / 입력 : 2009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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