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최고 - 우천면 정금1리
복분자 생산으로 부농의 꿈 키워, 회다지소리는 마을의 가장 큰 자랑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09년 11월 22일
89가구 224명 주민, 욕심없이 오손도손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  | | | ⓒ 횡성신문 | | 횡성읍에서 6번 국도를 따라 둔내면 방향으로 10분정도 가다보면 왼쪽으로 한얼문예박물관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 6~7분 더 들어가면 큰 바위에 ‘횡성 회다지 소리’ 정금민속보존회라는 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작고 조용한 농촌마을 속에 고풍스럽게 잘 지어진 정금향토민속관이 위용을 자랑하듯 우뚝 자리잡고 있고, 그옆에 깨끗하게 새로 도색된 마을회관이 사이좋게 나란히 서있다.
■ 마을유래
정금리는 본래 안흥면 지역으로 이곳의 지형이 우물처럼 생겼다 하여 우물의 변형인 ‘우밀’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예전에는 금광이 있어서 한자로 우물‘정’자와 쇠‘금’자를 써 ‘정금’이라 하던 것이, 마을 앞에 있는 ‘정금산’이 마치 솥을 걸어 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쇠낌’ 또는 ‘정금’이라 하였다고 한다.
192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숲’, ‘어둔이’, ‘발화골’을 병합하여 ‘정금’이라 하였다. 그후 1973년 행정관할구역 개편으로 우천면에 편입 되었다가 1·2리로 분리되었다.
정금리에서 갑천면 포동리로 넘어가는 곳에 ‘고락고개’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예전에 장수와 군사가 이곳에서 고락을 함께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고내고개’라고도 한다.
정금민속향토관 앞에 있는 ‘당제산’은 예전에 당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또한 정금1리 1반을 ‘병목거리’라고 부르는데, 마을이 병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장터’라고도 한다.
정금1리의 4·5반은 ‘쇠낌’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이곳에 금광, 은광이 있어서 그렇게 불리웠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예전에 이 마을에 천석꾼이 살았는데, 그 집에 손님이 자주 오는 까닭에 며느리가 힘이들자 고민하던 차에 마침 탁발 온 스님에게 손님이 안오게 하는 방법을 물으니 마을에 있는 소처럼 생긴 바위의 콧등을 깨면 된다고 하였다.
이에 며느리가 시키는대로 하자 손님은 모두 끊겼으나 집안도 망했다고 한다. 또한 이 마을은 추운 겨울에도 바람이 심하지 않아서 떨어진 옷을 입고 다녀도 춥지 않다고 하여 ‘누더기골’이라고도 한다.
5반은 마을이 안에 있다고 하여 ‘안말’ 혹은 ‘내정금’이라고 하고, 3반에는 ‘어둔이’라는 곳이 있는데 산이 마을을 둘러 쌓아 해가 잘 들지 않아 어둡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유래는 예전에 왕이 이곳을 지나가다 잠시 쉬었던 곳이라 임금을 뜻하는 ‘어’자를 써 ‘어둔’이라 했다고도 한다.
마을 골 안에는 ‘화서나무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예전에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 먹어서 그 시체를 이골에서 화장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 | | ⓒ 횡성신문 | |
|  | | | ⓒ 횡성신문 | | ■ 특산물과 주요사업
89가구 244명이 한 가족처럼 화목하게 사는 정금1리(이장 유승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며, 또한 고령화 마을로 추진력 있는 젊은이가 부족하여 마을 단위의 대규모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몇해전에는 마을주민들이 힘을모아 ‘참 살기좋은 마을’ 등 2~3가지 마을단위 사업을 시도해 보았으나 역부족으로 뜻을 이루지 못해, 의지가 위축이 되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조상이 물려준 논과 밭을 열심히 경작하여 마을주민들과 정을 나누며 따뜻한 삶을 누리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복분자 작목반도 만들어 고소득의 희망을 키우고 있기도 하다.
유승희 이장은 “비록 젊은이들 대부분이 도시로 빠져 나가고 지금은 대다수 노인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지만, 이런 고령화 현상이 비단 정금리 뿐은 아니다. 정부나 군에서도 많은 생각과 계획이 있겠지만, 우리도 마을 자체적으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찾아 다시 희망을 키우고 많은 젊은이들이 다시 찾아와 새롭고 활기찬 정금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며 의지를 다졌다.
|  | | | ⓒ 횡성신문 | |
|  | | | ⓒ 횡성신문 | | ■ 자랑거리
비록 많은 부를 누리며 풍족하게 살고 있지 않지만, 마을 주민들간의 우애는 어느마을에 뒤지지 않는다. 매년 여름이면 모든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작은 잔치를 열고 주민들간에 대·소사를 논하는 등, 서로 즐겁고 힘든일을 함께 나눈다고 한다.
하지만 정금1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우리나라 회다지소리의 본 고장으로, 정금리의 횡성 회다지소리가 1984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것을 계기로 정금리 마을이 회다지소리 전승마을로 지정이 되면서, 정금민속보존회가 조직되고 횡성지역의 장례문화와 전통의 소리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정금향토민속관이 1986년 9월 29일 민속관, 공연장, 전시장의 규모로 개관되고 더 나아가 태기문화제라는 축제행사를 탄생하게 했다.
태기문화제는 타 문화제에서 볼 수 없는 우리전통음악과 민속놀이가 어우러지는 독특한 양식으로 발전해, 해를 거듭할수록 관심이 높아져 횡성군민 모두가 참여하는 군민의 문화제로 자리잡았다.
정금리의 횡성회다지소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94년에는 제35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시연을 하였으며, 이듬해인 1995년 광복50주년 경축기념행사에서는 초청공연을 해 큰 호응을 얻었고 1996년 제11회 한국농민요총회 발표회, 1998년 제39회 전국민속경연대회 시연, 2000년 강원도 국악협회대공연 등에 참가해 모두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유감없이 실력발휘를 하며 횡성의 문화를 국내에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정금리의 회다지소리는 죽음을 맞은 인간에게 그 영혼을 극락으로 환송하게 하기 위한 노래로, 장례식 절차를 고증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삶의 지혜와 해학이 담겨 있고, 음악적인 감성과 율동이 조화를 이뤄 수준높은 예술로 승화시켜 가고 있다.
지금도 정금리의 양중하 씨가 그 기능 보호자로 지정되어 회다지소리의 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  | | | ↑↑ 정금1리 유승희 이장(사진 좌측), 정금민속향토관 강승호 사무국장 | | ⓒ 횡성신문 | | ■ 숙원사업
정금1리의 마을회관은 마을의 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지은터라 매년 30만원의 임대료를 내야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유승희 이장은 “마을회관부지 임대비용으로 매년 적지않은 지출을 하고 있어 넉넉지 않은 마을살림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마을의 공익적인 시설물인 만큼 관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정금1리에는 게이트볼장이 없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다. 그렇다고 마을 노인들을 위한 별다른 취미생활이나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있는 것도 아니어서 안타깝다. 더구나 점차 노인들의 수가 늘어가는 추세이다 보니 그 분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가 빨리 이루어 지기 바란다”며 “지금은 급한대로 향토민속관의 공연장에 임시로 게이트볼장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조속히 정식 게이트볼장이 만들어져 마을분들이 건강도 유지하고 우의를 다지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젊은이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하나 둘 농촌을 등지고 있는 요즘, 안정적인 마을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고민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않고 있는 정금1리 주민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기 바란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09년 11월 22일
- Copyrights ⓒ횡성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