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승기 횡성문학회장 | | ⓒ 횡성신문 | 횡성읍은 군내에서 도시규모가 가장 크고 많은 인구를 거느린 수부도시이다.동북쪽으로는 국사봉과 덕고산 등이 이어지는 중산간지대이며. 서남쪽으로는 앞내와 뒷내가 만나 섬강을 이루며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원주시 소초면과 호저면, 우리군의 서원면, 공근면, 갑천면, 우천면과 경계를 이루며 군의 서남부에 위치하였다.
국도 5·6호선과 중앙고속도로가 지나며 동서남북을 관통하는 영서내륙교통의 요지로 예로부터 횡성장은 “동대문 밖에서 제일 큰 장”이라 불리면서 사람의 왕래와 문물의 교류가 활발하여 상업이 번창하였다. 그로인해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라 평가되기도 했으나 그 에너지가 ‘횡성군민 만세운동’으로 표출되었고, 그 정신은 지금도 읍민의 긍지가 되고 있다.
횡성읍의 탄생은 1413년(태종 13년) 횡천현을 설치하고 1414년 현 소재지를 현내면(縣內面)이라 부르면서 비롯되었다.
1760년(영조36년)의 현내면은 내지(奈之), 옥동(玉洞), 영영포(永永浦), 개전(介田), 마산(馬山), 교항(橋項), 읍내(邑內) 등 7개리에 344호 760명(남 397. 여 363.)이고, 훗날 현내면에 통합되는 청룡면(靑龍面)은 추동(楸洞), 사곡(沙谷), 장안(長安), 청룡(靑龍), 모평(茅坪), 갈풍(葛豊) 등 6개리에 270호 612명(남 316. 여 296.)이었으니, 당시에는 2개면 13개리 614호에 1372명이었다.
1895년(고종 32년) 군제실시에 따라 횡성현이 횡성군이 되면서 현내면을 군내면(郡內面)으로 바꾸었으며, 이때에는 읍내리가 읍상(邑上), 읍하(邑下)로 나뉘고 마옥(磨玉), 궁천(弓川), 송전(松田), 북천(北川), 소군(昭君)리가 새로 생겨 13개리가 되었다.
1910년 면제가 정식으로 실시되어 면장을 임명하였다. 또한 1912년의 한국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는 군내면은 13개리로 1895년과 동일하나 청룡면은 추동, 조곡(鳥谷), 생운(生雲), 남산(南山), 입석(立石), 가담(佳潭), 묵계(墨溪), 청용, 곡교(曲橋), 모평, 반곡(盤谷), 갈풍리 등 12개리로 크게 늘어났다.
1914년 군면폐합으로 청룡면이 폐지되어 갈풍, 반곡, 모평, 곡교, 청룡, 묵계, 가담, 입석 8개리는 군내면에 흡수 21개리가 되었고, 추동, 조곡, 생운 남산 4개리는 우천면에 편입되었다. 1937년 군내면을 횡성면으로 고치고 소군리를 마옥리에 통합하여 20개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읍·면간 경계조정으로 우천면의 조곡, 생운, 남산리와 공근면의 학곡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횡성면이 마침내 횡성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83년 2월 15일 우천면 정암, 추동리를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횡성읍의 인구는 2009년 11월 1만8646명으로 2008년 12월말 1만8538명 보다 108명이 늘어나, 작지만 증가추세로 희망을 보이고 있다.
2만 명이 되지 않는 인구로는 수부도시라기에 궁색한 감이 없지 않다. 우리 모두의 향토사랑과 인구늘리기에 대한 관심과 노력으로 2만명 시대를 열고, 최소 5만명 이상 인구를 가진 도시로의 성장을 기대해 본다.
김승기 횡성문학회장/횡성군청 청정환경사업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