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회다지소리(강원도 무형문화재 제4호)는 영서와 영동의 문화가 만나 충돌하는 가운데, 전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 습합문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횡성군의 자랑으로, 그 모태를 우천면 정금마을에 두고 있으며, 해마다 태기문화제를 열어 전통문화예술의 계승과 발전에 힘쓰는 고장이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의 배경에는 조선시대의 중요교통수단으로 군내에 소재한 7개의 역중에 2개[오원역(烏原驛)과 대비원(大悲院)]가 우천에 있어, 내륙과 해안을 잇는 교통요지로 사람과 문물의 왕래가 빈번하였기에 가능하였다.
지금도 영동고속도로 새말 나들목과 국도 42호선 지방도 442호선이 교차하는 관광허브이자 공업 및 유통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우천면은 횡성읍, 갑천, 둔내, 안흥면을 비롯하여 원주시 소초면과 경계를 이룬다,
동북으로 치악산과 매화산, 전재, 정금산, 황재 등 고산이 펼쳐져 있고, 오원리에서 발원한 상수남천과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치악산에서 발원한 하수남천이 서남으로 흘러 문암, 두곡 등 넓고 비옥한 들을 이루고, 두 하천이 횡성읍 영영포리에서 만나 전천(前川)이 된다.
면 이름은 상수남천과 하수남천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 물이 한 모퉁이로 흐른다고 하여 모내라 불렸으며, 이를 한자로 모퉁이우(隅)자와 안내(內)자를 써서 우내면(隅內面)이라 부르다가 1414년(태종 14년) 우천면(隅川面)으로 고쳤다.
1760년(영조 36년) 발행된 여지도서에는 정암(正菴), 법주(法周), 오원(烏原), 수남(水南), 두곡(杜谷) 5개 마을에 178호, 419명(남 210명, 여 209명)이 산다고 하였다.
1912년 발행된 한국지방행정일람에는 정암, 법주, 백달(白撻), 오원리와 수남을 상수남, 중수남, 하수남으로 나누고 두곡리를 새로 두어 8개리로 늘어났으며, 1914년 실시된 군면폐합에 따라 폐지되는 청룡면에서 남산(南山), 생운(生雲), 조곡(鳥谷), 추동(楸洞), 4개리를 편입하여 12개리가 되었다.
1940년에는 상수남을 우항(牛項), 중수남을 양적(陽赤), 하수남을 문암(文岩)리로 각각 개칭하였다.
대한민국 수립후인 1973년 7월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조곡, 생운, 남산, 3개리가 횡성읍으로 편입되고 안흥면에서 정금(鼎金), 산전(山田), 하궁(下弓), 용둔(龍屯), 상하가(上下佳), 상대(上大), 하대(下大) 등 9개리를 편입하여 18개리가 되었다.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정암, 추동리가 횡성읍으로 편입되었고 1989년 1월 1일 오원리 새터가 안흥면 안흥2리에 편입되었으며, 1998년 10월 1일에는 정금, 산전, 하궁 지역의 행정업무를 관할하던 정금출장소가 폐지되었다.
총 면적은 9559ha(전 829. 답 839. 임야 6935. 기타 956ha)이고 법정리 14개리, 행정리 19개리에 88개 반을 두고 있다.
우천 제2·제3농공단지 조성 등 산업기반 확충과, 물류유통의 중심지로 각광 받으면서, 2008년 10월 기준으로 1959세대에 4564명(남자 2308명, 여자 2256명)에서 올해 10월말 현재 4579명으로, 감소세에서 증가세로 돌아서 희망을 갖게 한다.
김승기 횡성문학회장 / 청정환경사업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