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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을 위해 비행학교를 세우고자 했던 공명 단장 최양옥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10년 04월 16일
무장 독립투쟁에 앞장선 최양옥(崔養玉, 자:吉俊, 호:秋岡)지사는 1893년12월5일 갑천면 화전리에서 최재강의 장남으로 태어나 원주보통학교(1913~1917년)를 졸업한 뒤 서울의 중동중학교에 입학한 당시 농촌에서는 보기드믄 엘리트로 민족정신과 항일사상이 투철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공부보다 광복이 우선이라며 중퇴 후 고향으로 내려와 ‘횡성군민 만세 운동’에 앞장서 일본경찰의 추격이 심해지자 만주로 망명하여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선다.
이동녕, 박은식이 이끄는 독립군에 가담하여 군자금모집의 임무를 띠고 1920년 서울로 돌아와 신덕영, 노형규와 비밀결사인 부한청년단을 조직하고 외견상 만주농림주식회사의 창립하여 주식모집원으로 위장하고 전라도에서 많은 군자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로 보낸다.
11월5일 노기준과 전남 담양과 곡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자동차로 광주로 가다가 체포되어 1921년5월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의 언도를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26년 출감하여 고향을 찾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부친은 이미 돌아가시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찾을 길이 없자 독립운동에 목숨을 받칠 것을 결의하고 다시 중국으로 건너간다.
중국 산서성 태원부에서 안창남, 이용화, 김정련과 더불어 공명단(共鳴團)을 조직하고 단장에 피선되었으며 1927년 일제와 싸우기 위해서 독립군비행사 양성이 절실하다는데 공감하고 북만주에 비행학교를 설립하기로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비행학교 설립기금모금과 본국에 공명단지부 설치를 위해 김정련, 이선구와 1929년4월 입국하여 4월20일 서울 망우리에서 춘천으로 가는 우편물수송차를 권총으로 습격하여 우편낭에서 많은 돈을 빼앗고 동포의 우편물을 제외한 일본인 우편물은 전부 불태워 버렸다.
이때, 지나가던 자동차를 모두 세우고 운전수와 승객 70여명의 눈을 가려 산속으로 끌고 가서 감금하여 산 밖으로 정보가 새지 않게 하였으며 일행은 행장을 수습하고 강원도 쪽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급보를 받은 일경은 경기, 황해, 강원, 충북, 충남 5도의 경찰과 일본군 19사단의 응원을 받아 양주 천마산을 포위하고 전투를 시작하여 망우리고개와 마치고개를 넘나들며 1주야를 악전고투하였으나 탄환은 떨어지고 중과부적으로 체포되었다.
경기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김정련 9년, 이선구 6년)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10년이란 긴 세월을 복역(이선구는 옥중에서 병사)하고 만기 출옥하였다.
광복 후에 서울형무소와 인천형무소장을 역임한 후 향리에 내려와 노년을 보내다 1983년5월4일 별세하였으며,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10년 0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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