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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용사의 투혼이 서린 매일리 충혼탑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10년 06월 13일
 |  | | | ↑↑ 김승기 / 청정환경사업소장 | | ⓒ 횡성신문 | 천안함사태로 6·25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임을 일깨워 주는 올해, 보훈의 달을 맞아 횡성에서 있었던 전쟁의 기억과 상처를 돌아본다.
횡성이 전략적 요충지인 탓에 어느 곳이나 참화가 할퀴고 갔지만, 갑천면 매일사람들이 겪은 상처는 더욱 혹독했다.
기습공격으로 후퇴했던 아군이 북진하자 산속이나 남쪽으로 피란했던 사람들이 속속 고향에 돌아왔지만 희망의 땅이 아닌 죽음의 마을이 되어있었다.
태기산에 은신한 패잔병과 불온한 사람들이 내통하여 약탈과 방화, 살인을 일삼는 무법천지가 되어 갑천지서 순경 4명이 치안질서의 유지가 어려워지자, 젊은이들이 스스로 마을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자 1950년 10월 결사조직인 갑천의용경찰대를 결성하였다.
김문걸을 대장으로 한 30여명의 대원은 정예의 군사훈련을 받거나 경찰처럼 보수를 받지도 못하고, 9.9식 소총과 적에게 노획한 보잘 것 없는 무기로 무장했지만 젊음과 향토애, 구국의 일념으로 치안보조와 부역자를 검거하고 패잔병을 소탕하는 일을 도맡았다.
구리봉, 어답산에 은신한 패잔병을 소탕하자 치안은 빠르게 회복되고 마을도 안정을 되찾아 가던 중, 주간순찰을 마치고 야간순찰을 위해 휴식 중인 저녁 무렵, 산속 곳곳에서 은신하다 지리산 공비와 합류하고자 남하하던 적을 만나 일전을 벌인다.
비록, 패잔병이라지만 중무장한 엄청난 수(연대이상으로 증언하고 있음)의 정예군과 30여명(경찰 포함)의 싸움은 처음부터 엄청난 희생을 강요했다.
하루 밤낮 계속된 전투로 지서는 완전히 파괴되고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던 시가지는 다시 불타버렸다.
구리봉에서 시작해 삼거리와 전촌리까지 쫓고 쫓기다 어답산에서 의용대가 승리하고 날이 밝자 하산, 횡성으로 향하다 돌돌벌에서 대규모 기습을 받아 교전을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큰 피해를 입고 전투는 막을 내린다.
이날 참전한 대원 8명 중 대장 김문걸과 대원 박준금(20세, 학생)·노성빈(20세)·이의홍(21세, 학생)·신기묵(19세)·박병국(22세, 농업)· 홍주석(22세) 등 7명과 방위장교 이상묵이 전사하고, 정병균 순경이 총상을 입었으나 오광렬이 민가에 피신시켜 목숨을 구했다. 홍석규만이 피투성이로 생포되어 죽창으로 죽임을 당했으나 기적처럼 살아나 증언한다.
전쟁발발 15년 후인 1965년10월1일 갑천면민은 이들의 희생을 영원히 기리고자 순국자 여덟분을 기리는 순국8용사 현충탑을 세웠으나, 1984년 국도 확장으로 헐리게 되어 면사무소 옆에 새롭게 탑을 세워 장한 뜻을 후세에 전한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10년 0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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