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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문화관광지로 거듭나는 풍수원성당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0년 07월 30일
↑↑ 김승기 / 종합민원실장
ⓒ 횡성신문
오늘날 수많은 차량의 행렬이 이어지는 서울 - 강릉을 오가는 국도변이지만, 2세기 전만해도 첩첩산중 오지로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길고 높은 도둑고개를 넘어 첫 마을이 서원면 유현리 풍수원마을로, 우리나라 천주교회사를 대표하는 성지이다.

잘 정리된 마을을 배경으로 웅장하지는 않으나 큰 느티나무가 운치를 더하는 고색창연한 고딕식의 성당을 만나게 되는데, 이 성당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이자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번째 성당인 풍수원성당[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1982. 11. 2 지정)]이다.

이 마을은 1801년 신유박해로 천주교인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1802년 3월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와 40여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다니다 정착한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신앙촌으로 80여년 간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하다 1888년 불란서인 르메르 이 신부를 맞아 정식으로 교회를 설립하였다.

1866년(고종3년) 병인년 교회대박해와 1871년(고종8년) 신미양요로 신자들이 관헌들의 눈을 피해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 산림이 울창한 벽지인 이곳에 전국에서 많은 신자들이 모여들어 큰 마을을 이루고 화전을 일구거나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20년간을 지냈다.

1888년 6월 20일 조선교구장 민 대주교가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프랑스인 르메르 이신부가 부임하여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하였으며 당시 신자 수는 2천여 명으로 초가집 20여 칸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1896년 2대 주임 정규하(아우구스띠노)신부가 부임하여 중국인 기술자 진 베드로와 함께 1905년 벽돌 연와조 120평 규모인 성당을 착공하고, 신자들이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나무를 해오는 등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하여 1907년에 준공하고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이처럼 풍수원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한국 최초의 성당이자 강원도내 첫 번째 성당으로, 오늘날 강원도 전체와 경기도 일부 지역의 성당은 이 성당에서 분당된 것이다.

이 성당에서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대축일을 기해 1920년에 제1회 성체대회가 실시된 후, 올해 84회에 이르기까지 매년(6·25동란 3년간 제외) 치러지는 신앙의 요람이요, 선조의 얼이 담긴 역사의 현장으로 30여 명의 한국인 사제를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0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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