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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광복 제70회 일정(日政)을 상기하면서
광복정신 계승하여 통일기반 구축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15년 07월 10일
 |  | | | ↑↑ 학산 송 영 수 원장 학산미예연구원(안흥면) | | ⓒ 횡성뉴스 | 조국광복의 기쁨을 누린지 올해로 벌써 70해를 맞는다.
광복은 장장 50년(1895-1945년)에 걸친 선열들의 피눈물 나는 항일독립투쟁의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돌이켜 보면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으로 최대의 시련과 고통 속에서 살아 왔다. 일제의 극악한 침탈로 전 국토는 벌거벗은 산으로 변하고 말았었다.
식솔(食率)들은 해초(海草)·산초(山草)로 끼니를 때워가는 극빈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회상하면 그 당시 사람들은 입도선매(立稻先賣)니, 춘궁기(春窮期) 또는 보릿고개니 하는 말들을 해 왔는데, 말 속에 뼈아픈 궁핍의 아린 역사가 베여있다.
우리 어머니들은 식구들을 먹이기기 위하여 수백리 길도 마다 않고 도부(到付)로 곡물을 교환하여 수 없이 멀고 험한 길도 마다 않고 도보(徒步)로 식구들의 끼니를 해결 하고자 애썼다.
우리 고유의 언어 문자가 있어도 마음놓고 사용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이름(姓名)마저 개명하여 버렸다. 철(鐵)로 된 기물(器物), 조상의 제기(祭器), 먹는 수저까지 빼앗아 갔다.
또한 전시라는 명분으로 공출(供出)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민간인의 물자나 애써 수확한 해
물과 곡물을 우량품만 선분(選分)하여 강제로 바치게 해서 일본으로 적송해 갔다.
우리 젊은 장정은 징병되어 전쟁터로, 젊은 여자는 일본군의 위안부로, 나이 많은 분은 징용(보국대)으로 끌려갔다. 남은 사람은 위문품 만들기, 방공호파기 등에 종사시킴으로 한민족 전 국민이 노역되는 실정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에게 열등의식을 심어주고자‘조센징(조선사람)’은 두들겨 패야 한다면서 구박하였고‘엽전’이라 하면서 철저히 무시하면서 일제치하의 폐악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시간이 가면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국주의는 갈수록 패색(敗色)이 완연해지고 있었고, 그런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듯 일본은 최후까지 발악했다.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근로봉사라는 미명아래 통영 명정동 앞·뒤 산에 그들이 벌목(伐木)하고 남은 뿌리마져 송탄유(松炭油)를 만든다고 권솔채집(眷率採集)으로 내몰았다.
어떤 날은 오전수업 한 두 시간만 끝내고 학년 별로 산으로 가서 꼴(풀)배기 방공호파기 등 힘에 부치는 일들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질곡(桎梏)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그런 세월로 보낸 치욕의 36년간을 우리 세대는 물론 차세대가 잊지 않고 가슴깊이 새겨야할 것이다.
내가 통영 충렬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1945년 그 해 여름에 결국 우리 민족이 그처럼 고대해 마지않던 해방을 맞게 되었다.
동남아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려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군국주의 일본 천황 히로히토(裕仁)가 비통한 어조로 무조건 항복한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우리 민족은 환호작약(歡呼雀躍)했다.
일본 히로시마(廣島) 나가사끼(長崎)에 미군이 투하한 원자폭탄은 가공할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패색이 짙어가던 일제에 회복 할 수 없는 타격을 가함으로써, 일황은 미 해군 미졸호 함상에서 연합군 최고 사령관인 맥아더 원수에게 항복문서를 바치고 대전은 종지부를 찍었다.
해방의 감격은 잠시였고 국내정세는 또 다른 제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시 휩쓸려 들어갔다. 힘없는 나라에게 주어진 해방이란 그렇게 나약하고 견고치 못하였다.
한반도를 횡단하고 있는 곳에 수위 북위 삼십팔도선이 그어져 남쪽에는 미군이, 북쪽에는 쏘련군이 진주함으로써 조국은 둘로 나누어졌다.
그것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는 전조였고, 결국 삼팔도선이 나중에는 6·25 동난이라는 민족의 비극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줄은 그때는 그 누구도 몰랐다.
그 이후로 이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국토 분단을 겪어야 했고 사상적 분단으로 수많은 비극이 연출되었다.
생각하면 사상이라고 하는 정치적 편 가르기는 몇 몇 정객들이 연출하는 피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어 소름끼칠 때가 있다.
세계 역사를 둘러보아도 나라와 나라, 사상과 사상이 편 가르기를 하면서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켜 몽매(蒙昧)하고 힘없는 사람들만 대량 학살당하는 피의 연속이 아니던가.
다행스러운 것은 광복절을 유일하게 남북한 모두가 국가 기념일로 삼고 경축하고 있다. 광복 70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국민과 한민족은 지난 고통의 역사를 함께 겪은 토대 위에서 동질성(同質性)을 회복하여 분열과 대결은 모두 내려 놓아야한다.
이렇게 한민족이 하나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평화통일만이 진정한 광복이 될 것이다. 이 진정한 광복을 위하여 역량을 구축하여 민족상생(民族相生)을 이루고,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15년 0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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