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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우리가 몰랐던 설 이야기>

“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6년 02월 01일

7세기 중국 역사서의 신라 관련 기록에‘설 등장
설날 떡국의 흰떡, 밝은 한해와 둥근 태양 상징


설은 음력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달의 첫날임과 동시에 한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날을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라고 하기도 하는데, 모두 한해의 첫날을 뜻한다.

순수 우리말인 ‘설’의 유래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아 여러 가지 설(說)이 전해지고 있다.

첫째, ‘낯설다’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섦’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둘째, ‘선날’, 즉 개시라는 뜻의 ‘서다’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되어 설날이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의 ‘사리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이다

넷째 ‘섧다’의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가 지남에 따라 점차 늙어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뜻에서 생겼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마지막으로 설이라는 말이 17세기 문헌에 ‘나이·해’를 뜻하는 말로 쓰인 것으로 보아 ‘나이를 하나 더 먹는 날’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우리나라의 설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기록은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 『수서』와 『구당서』의 신라 관련 기록에 등장한다. “신라인들이 원일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고 기록해 놓았다. 그러나 설 명절이 역법체계에 따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전부터 설이 존재했으리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예전에는 설을 ‘설 명절’이라고 불렀는데, 이 명칭은 정월초하루 단 하루에 그치지 않았다. 설이란 용어 자체는 정월 초하룻날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실제 명절은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음력 1월 1일부터 15일까지의 기간을 통틀어 ‘설 명절’이라고 불렀다.

◈ 무사 안녕을 기원…세배 온 손님 떡국 대접

ⓒ 횡성뉴스
조선시대에 설날을 맞은 관료들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렸고, 가정에서는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을 찾아뵙는 세배를 올렸다.

민가에서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남녀의 나이가 삼재를 당한 사람들은 3마리의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기도 했다.

속담에 나오는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은 섣달그믐날 인가에 내려와 자는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그 신의 주인은 불길하다 믿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이 귀신을 두려워하여 모두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자면서 체를 마루벽이나 뜰에 걸어 두었다. 그러면 이 야광신이 와서 이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고 여겼다.

설날 차리는 음식은 ‘세찬(歲饌)’, 술은 ‘세주(歲酒)’라고 한다. 설날이 되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세배하러 온 손님에게도 대접하는데, 이때 반드시 떡국을 차린다. 흰쌀을 빻아 만든 떡국은 설날 아침 제사 지낼 때 제물(祭物)로 차리거나 손님에게 차려낸다. 설날 흰떡을 사용하여 떡국을 만드는 것은 새해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음의 뜻으로 흰떡을 사용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등 태양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듯하다.

◈ 설날 복(福)을 부르는 복조리와 복주머니

ⓒ 횡성뉴스
우리 선조들은 새해에 개인의 신수를 가늠하기 위하여 윷점을 치고, 토정비결을 보기도 했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흘이 지나면 어린아이들이 연날리기를 하다가 음력 1월 14일 저녁에 줄을 끊어 날려버리면 그 해에 드는 액을 물리친다고 생각하였으며, 이것을 ‘액막이연’이라고 불렀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1년 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를 ‘청참(聽讖)’이라 했다. 또한 나무에 금·목·수·화·토를 새겨 장기 쪽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자빠지고 엎어진 것을 보아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점치는데, 이를 ‘오행점(五行占)’이라 한다.

설날 복을 나누는 두 가지 소품으로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빼놓을 수 없다.
정월 초하루에 만들어 파는 조리는 특별히 복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복조리라고 불렀다. 이른 새벽부터 조리장수가 조리를 팔기 위하여 초하루 전날 밤부터 복조리 사라고 외치며 돌아다닌다.

각 가정에서는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서 1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의 복조리를 사는데, 밤에 미처 사지 못한 사람은 이른 아침에 산다. 일찍 살수록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이므로 그 해의 행복을 조리와 같이 일어 얻는다는 뜻에서 이 풍속이 생긴 듯하다. 조리는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죽사(竹絲)로 엮어서 만드는데, 이 조리를 각 가정에서는 몇 개를 한데 묶어 방 귀퉁이나 부엌에 매달아 두었다가 쓴다. 조리 속에 돈과 엿을 넣어두면 더욱 좋다고 하였다.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설날에 우리 선조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함께 나누는 기쁨이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곁을 지키는 가족들의 일년간 행운을 빌어주는 설날 고유의 뜻을 한 번쯤 생각하며 연휴를 보내면 어떨까.

◈‘까치설날’은 왜 어저께일까?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 무렵이면 한번은 꼭 듣게 되는 동요 ‘까치까치 설날’은 사실 조류인 까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까치설은 어린아이의 말로, 설날의 전날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큰 설은 ‘한설, 한첫날’이라 일러지며 ‘가위(中間)’ 가운데 큰 가위를 ‘한가위’라고 하는 것과, 작은 설은 ‘아찬설, 아치설’로 불렸다.

이처럼 작은 설(설날 전날, 섣달그믐)에는 미리 설빔을 입고 친척과 이웃 어른들께 세배를 하러 다녔다. 즉 작은 설 아치설은 ‘묵은세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밤을 까고 어머니는 차례상을 준비하는 날이기도 했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6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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