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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66주년 6·25전쟁, 학도병의 수기 (2)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16년 0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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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영수 학산미예연구원 원장 |
| ⓒ 횡성뉴스 | 1950년 9월 19일 해군 제18기(해병대 3기·4기 해당)에 자원입대 하였다. 당시 전세가 위급한 상황이라 해군에서 해병대로 전역하는데 큰 무리가 없어, 해군에서 해병대로 자원 전역(自願轉役)하였다. 1개월간의 특수훈련을 받는데 이 훈련이 너무 힘들어 견디지 못해 탈영병(脫營兵)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즉시 검거되어 진해 통제부 사격장에서 장병들이 보는 앞에서 총기로 사살되어 목숨을 끝내고 사라진 훈련 동기병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더욱 고된 훈련과 기합방식이 다양하게 연출되어 심히 견디기 힘든 기합을 받아야만 했다. 이 혹독한 훈련을 모면하기 위하여 탈영까지 수차 생각하는 갈등 속에 소정의 훈련을 마치고, 1950년 10월 20일 해병대 제1연대에 배속되었다.
그 무렵 전방의 치열한 전투로 전상자는 연일 속출하여 후송됨으로 보충병이 화급한 상황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함정(艦艇)에 본 소속 해병대 제1연대는 중무장하여 승선(乘船)하였다.
진해에서 출항한 수일 후 중동부 전선 미 해병대 사단과 합류하였다. 이 미 해병대와 합동작전으로 북진공세를 거듭하던 중, 좌측 중서부전선 육군 제6사단이 붕괴되었다.
이로 인하여 본 해병연대가 큰 곤욕을 치르면서 힘에 부친 학도병이 또 2명의 탈영병이 생겼다. 이들 역시 체포되어 항변할 여지도 없이 즉시 많은 장병들 앞에서 총으로 사살되었다. 이는 탈영예방 경각심으로 희생양의 제물이 되어 무참하게 사라졌다.
한편, 아군은 진격을 위하여 상사는 병사에게 적구 정찰병의 명분으로 명(命)하여 북군이 매설한 지뢰밭을 진입하게 한다.
이 병사는 지뢰를 밟아 폭파로 희생된다. 상사(소속장=所屬長)는 다시 다른 병사에게 명하여 진입케 하여 차례로 지뢰를 밟아 터트려 진입로를 만드는 형국인데, 동료들을 대신하여 앞서 목숨을 잃게 된다.
때로는 너무 피로가 쌓여 행군하면서 소변을 옷에 그냥 보게 된다. 볼 때는 따뜻하나 소변에 젖은 바지가 혹한 추위에 얼게 된다.
이 얼게 된 바지에 부드러운 사타구니가 긁혀서 피가 나는 데도 계속 행군하게 된다. 이와 같이 계속 피로가 쌓인 몸을 휴식도 없이 바로 졸면서 간다. 이 행군으로 인하여 눈 덮인 깊은 계곡에 추락하여 생명을 잃은 병사가 있다. 이 같은 사항의 한 단면의 실상을 다시 연상해본다.
특히, 해병대는 특수임무의 명이 잦아 북한군과의 교전 거리는 보통 100m 이내에서 형성된다. 의무수행 전투 중 위급한 상황에서 병기를 전투지에 두고 구사일생으로 생존하여 아군진에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사건으로 간주하고, 두고 온 중기나 경기 같은 무거운 화기를 다시 가서 반드시 회수한다.
이와 같이 엄한 군기로 불가능이 없다는 도전의 해병정신을 무장하게 한다. 앞서 열거한 상황들은 현시대에는 걸맞지 않는 사건들이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16년 0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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