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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문화원, 횡성출신 독립운동가 집중 조명

‘횡성인 최양옥의 독립을 위한 몸부림’ 발간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7년 02월 03일

ⓒ 횡성뉴스
횡성문화원(원장 박순업)은 향토사료 제29집 ‘횡성인 최양옥의 독립을 위한 몸부림’을 펴냈다.

최양옥 독립운동가는 1893년 12월 5일(음) 횡성군 갑천면 화전리에서 출생해, 24세가 되던 1917년 원주보통학교 졸업과 함께 서울 중동중학교에 입학하고, 26세 되던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같은 해 3·1운동 후 아버지 친구 신병선 집에 거주할 때 만주에서 돌아온 신덕영(신병선의 아들)에게 독립운동 참가 권유를 받고 독립운동 참여를 결정하고, 같은 해 낙향과 함께 횡성4·1만세운동에 참여한다.

이후 오로지 조국독립을 위해 살아온 선생은 대동단 사건으로 5년, 공명단 사건으로 10년 등 15년의 수감생활과 광복 후 경성형무소와 인천 소년형무소 근무 등, 총 20년 동안 형무소와 인연을 맺는 기이한 인생을 살아오다, 1980년경 못 다한 효를 하기 위해 아내 김씨와 함께 선친이 묻혀있는 횡성군 갑천면 전촌리로 내려와 선친의 묘소를 오가며 마지막 효성을 다하다, 1983년 6월 별세해 선산에 영면했다.

총 7장과 부록 등 300여 쪽으로 횡성문화원이 발간한 향토사료 제29집 ‘횡성인 최양옥의 독립을 위한 몸부림’은 현재 강원도청 강원도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원주문화원 이사인 김동정 씨가 집필을 맡았다.

박순업 횡성문화원장은 발간사에서 “횡성에서는 은밀히 만세운동 계획이 진행되어 1919년 3월 27일, 4원 1일, 4월 2일 3차에 걸쳐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횡성시장에 울려 퍼졌고, 그 가운데 최양옥 애국지사는 만세운동에 앞장섰다 체포되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하여 조국 광복까지 모진 역경을 무릅쓰고,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에 몸 바친 분이다”며 “횡성을 애국의 고장이라 부르는 것은 이러한 분들이 많기 때문으로, 횡성 항일운동의 중심인물인 최양옥 지사의 일대기를 담은 ‘횡성인 최양옥의 독립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향토지를 발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7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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