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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본 고향마을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여기는 ‘누구누구네 집’하며 집집마다 누가 사는지 속속들이 알고, 눈감고도 알 수 있을 만큼 골목골목도 소상히 꿰뚫지만 전체의 마을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을 것으로, 각 마을을 찾아 ‘하늘에서 내려다본 정겨운 우리 고향마을’ 사진과 함께, 마을유래 및 특성, 주산물, 현재의 주민 생활상 등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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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성뉴스 |
| 서원면 창촌1리(書院面 倉村1里)는 횡성읍(군청)에서 약 21.8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승용차로는 횡성읍에서 공근면 방향으로 진행하다 서울·양평 방향으로 좌회전 후 한참을 달리다, 서원 방면으로 다시 좌회전 후 진행하는 등으로 30분여 가다보면 서원면소재지인 창촌1리 마을이 나온다.
창촌리는 본래 원주군 고모곡면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 때 사창(社倉)이 있었으므로 창말 또는 창촌이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년) 횡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창말, 매나미, 응달말, 장골, 점말, 큰골을 병합하여 삼리(三里)라 하다가, 1937년에 창촌리로 고치고, 현재 1·2리로 분리되어 있다.
창촌1리는 현재 이학용(63) 이장을 중심으로 148세대 320명(남 166, 여 154)의 주민으로, 6반까지 있는 마을로 1반은 심정희(여, 37) 반장, 2반 오인기(62) 반장, 3반 정순득(여, 73) 반장, 4반 최동순(여, 65) 반장, 5반과 6반은 정명환(41) 반장, 노인회장엔 원기종(83) 옹, 새마을지도자는 김인중(56) 씨, 부녀회장은 김금연(여, 67)씨 등이 맡아 이학용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창촌1리는 답(논) 21ha, 전(밭) 30ha로 마을주민의 70% 정도가 농업에 종사하는 가운데 벼농사 및 들깨, 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있으며, 약 25농가가 한우 또는 젖소를 키우는 축산겸업농으로 적게는 30여두에서 많게는 200여두를 사육하고 있고, 나머지 주민들은 면소재지 마을답게 상업 및 직장생활에 종사하고 있다.
이 마을은 내년 말(2018년 12월)까지 면소재지종합정비사업으로 약 82억5천만원이 투입되는 가운데, 기초생활기반 사업으로 다목적광장, 문화복지센터 신축 등이 추진되고, 지역경관 개선사업으로 전선지중화 사업, 가로환경 조성, 가로정비(간판, 담장) 사업 등이 추진돼 별도로 요하는 주민숙원사업은 없으나, 향후 마을안길 아스콘덧씌우기 공사 및 각 가정 내에서도 마을에서 알리는 각종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집집마다 스피커를 설치하는 앰프시설 지원을 희망했다. 또한 노인회원이 85명 정도로 노인인구가 많은 마을로서 노인회의 바람(숙원)은 “마을 공동의 부지(터)가 마련돼 양로원을 자체적으로 신축해, 먼 타지역까지 안가고 내 마을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싶다”며, 군의 깊은 관심과 지원을 당부하고 있다.
한편, 창촌1리에 지난 1997년 건립된 ‘매봉서원(梅峰書院)’에서는 2008년부터 매년 매봉제례를 봉행해 오고 있는 가운데, 횡성군지(橫城郡誌)에 소개된 창촌1리 내 옛 지명을 살펴보면 먼저 ‘다리골’은 매남이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소나무와 흙으로 만든 다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남이’는 창촌1리 1·2반에 속하는 곳으로 용마(龍馬)가 나와 넘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창말 남쪽에 있는 창바우에서 장사가 난 것을 역적으로 몰아 죽였는데, 그 후 이곳에 있던 큰 웅덩이에서 용마가 나와 3일 동안 장사를 찾으며 울다가 질재로 넘어갔다고 한다.
‘매자골’은 창촌1리 6반에 속하는 곳으로 용마가 난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마재골’이라고도 한다. ‘삼성당’은 1리와 2리의 경계에 있는 곳으로 김, 이, 안씨 등 세(三) 성(姓)이 이 마을을 개척하여, 후손들과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사당을 짓고 매년 10월이면 제사를 지냈는데, 일제 때 신사터를 이곳에 설치한 까닭에 헐렸다고 하며, 지금은 공덕비가 서있고 ‘삼성댕이’라고도 한다.
‘쇠지개골’은 매남이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쇠지개가 나왔다하여 이름이 붙여졌고, ‘아랫매남이’는 2반에 속하는 곳으로 매남이 아래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우무골’은 매남이에 있는 골짜기로 난리 때 움집을 짓고 살아 붙여진 이름이고, ‘윗매남이’는 1반에 속하는 곳으로 매남이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응달말’은 5반에 속하는 곳으로 마을이 응달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점말’은 응달말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옹기점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질재’는 매남이에서 유현1리 느루개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가 길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창말’은 3, 4반에 속하는 곳으로 예전에 사창(社倉)이 있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군엇’이라고도 한다. ‘창바우’는 창말에서 옥계리로 가는 길에 있던 바위로 도로확포장으로 지금은 없어졌으나, 전설엔 이곳에서 장사가 났는데 역적이 될 우려가 있다하여 맷돌을 얹어놓아 죽였다고 하며, 또 이곳에 살던 부지런한 농부가 현몽으로 금 항아리를 얻어 부자가 되어 기념으로 ‘창암(倉岩)’이라 바위에 새겨놓았다고 한다. ‘햇골’은 매자골에 있는 골짜기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골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흙무고개’는 도창말에서 창촌1리 건너말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인 터 뷰 ∥ 이 학 용 창촌1리 이장 “마을일 하면서 많이 알게 되고, 하나하나 풀어가니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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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성뉴스 | 창촌1리 이학용 이장은 이 마을 토박이로 지난 2013년 봄, 20여년 근무하던 서원농협을 정년퇴임하고 1년여 2반 반장을 역임하다 마을이장을 맡은 가운데, 한우 50두를 사육하는 축산겸업농으로 논 1000여 평의 벼농사 및 밭 1000여 평에 옥수수 및 들깨 등을 재배하고 있다.
“마을이장을 맡을 당시만 해도 농촌실정도 잘 몰랐고 어르신들 및 주민들의 애로사항도 잘 몰랐는데, 차츰 마을일을 하면서 많이 알게 되고 하나하나 풀어가니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낀다”는 이학용 이장은, 한때 20대에서 30대 후반까지는 외지에서 수출업 등의 개인사업 및 직장생활을 하다 “고향이 좋고, 고향이 그리워서 귀향한 후 서원농협에 기능직으로 입사했다”고 말했다.
마을 내 크고 작은 공지사항이 있으면 직접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연락하고, 환자발생 시 돌봄 및 병원후송은 물론 어려운 이웃 챙기기에도 앞장서는 등으로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한 이학용 이장은 “무엇을 하던 노인회 및 부녀회 등 전체 주민의 화합과 단합이 잘돼 정말 자랑스럽다”며,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을회관을 개방하는 가운데 노인들 점심식사 제공 및 겨울철 농한기 3개월간은 매주 월요일 노래교실 운영과, 월·수요일엔 보건소의 요가수업도 실시하고, 매년 설 명절엔 합동세배 행사를 갖고 정월대보름엔 윷놀이행사를 갖는다고 했다.
또한 이 마을에선 매년 어버이날 경로잔치 및 노인관광을 추진하고, 삼복(三伏, 초·중·말복)엔 복달임 행사를 실시하고, 음력 2월 초하루엔 전 주민들이 나이떡 나누기 행사도 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