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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성뉴스 |
| 「하늘에서 바라본 고향마을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여기는 ‘누구누구네 집’하며 집집마다 누가 사는지 속속들이 알고, 눈감고도 알 수 있을 만큼 골목골목도 소상히 꿰뚫지만 전체의 마을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을 것으로, 각 마을을 찾아 ‘하늘에서 내려다본 정겨운 우리 고향마을’ 사진과 함께, 마을유래 및 특성, 주산물, 현재의 주민 생활상 등을 알아본다.」
갑천면 중금리(甲川面 中金里)는 횡성읍(군청)에서 10.4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승용차로는 약 21분여 횡성읍에서 태기로 읍사무소와 경찰서 사이 청일 방면으로 좌회전 후 7.1km 정도를 진행하다,
횡성호와 어답산을 마주한 좌측으로 들어서면 중금리(이장 김철수) 마을이 나온다. 중금리(中金里)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문동, 군량골, 마당재, 오삼대를 병합하여 중금리라 하였는데, 횡성댐이 생기면서 마을은 거의 다 수몰되고, 현재는 마당재(2반)와 짝바우(1반) 등 일부만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이름 유래는 예전에 사금(沙金)을 많이 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금리는 현재 김철수(60) 이장을 중심으로 30세대 86명의 주민으로 2반까지 있는 작은 마을로 1반은 유방준(82) 반장, 2반은 이순연(80) 반장이 노인회장을 겸하고 있으며, 새마을지도자는 이연배(63) 씨로, 부녀회는 구성돼 있지 않은데, 원래 이 마을은 횡성댐으로 수몰되기 이전에는 110여 가구로 5개 반의 제법 큰 마을이었으나, 댐이 생기면서 구방리·중금리·화전리·부동리·포동리 등 5개리 258세대가 물에 잠기면서 주민들의 대부분이 우천 또는 원주로 이주하고, 유물은 수몰 5개 마을을 기념하는 망향의 동산으로 옮겨 현재는 작은 마을로 이곳 주민들 중 1반은 70∼80%가 귀촌인이며, 주민들 대부분이 농업인으로 벼농사 및 옥수수·참깨·콩·고추 농사 등을 짓고, 한우사육 겸업농 2가구, 과수농가 2가구, 양봉농가 1가구 등이다.
중금리는 ‘횡성호’와 진한의 마지막 왕이었던 태기왕이 밟고 지났다 하여 이름 붙여진 ‘어답산’이 그림같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마을로, ‘원주이씨 효자각 정문’이 있고, 매년 정월초 제(祭)를 올리는 참나무·소나무에 둘러싸인 ‘성황당’이 있는 마을로, 지난해 말엔 K-water 횡성·원주권관리단의 댐 주변지역 지원사업으로 설치된 마을공동 수익사업인 경로당(마을회관 겸용) 지붕위에 태양광발전기 사업을 추진, 현재는 사업초기라 아직 평균수익은 산출되지 않으나 향후 월 1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예상하고 있고, 회원 15명의 노인회에선 올해 착실히 대상지(농경)를 준비해 내년부터는 휴경지를 경작해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다. 또한 현재까진 집집마다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부터 상수도공사가 추진돼 내년 중엔 마을 전체에 상수도가 공급될 예정으로 주민 모두 크게 반기고 있다.
중금리 마을(주민)의 숙원사업은 “횡성호수길 정비와 함께 관광코스가 개발되길 바란다”는 김철수 이장은 “현재 호수길은 되어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려면 미진한 부분이 있어 보다 편리하고 완벽하게 갖춰줬으면 좋겠고, 언젠가는 반드시 조성돼야 하지만 현재는 국도를 거쳐야하는 횡성댐 가는 길을, 중금리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연결해 곧바로 갈수 있는 길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현재의 호수길을 약간 넓혀 임도 수준만 되어도 충분할 듯 싶다”고 말했다. 한편, 횡성군지(橫城郡誌)에 소개된 중금리 내 옛 지명을 살펴보면, 먼저 ‘군량골’은 2반에 속했던 마을로 예전 화전현(花田縣)이 있을 때 화전리(花田里)에 그 치소(治所)가 있었고, 이곳에 군량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능머루’는 아랫말 북쪽 돌아가는 굽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앞 계천에 세모바위가 있고 건너편 골짜기가 산소골 이다.
‘마당재’는 한치 위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는 것으로, 고개 위에 마을이 넓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장현동(場峴洞)’이라고도 하고, ‘매봉’은 쟁골 초입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매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무릿고개’는 아랫말에서 대관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가리키던 것으로, 이 고개 밑에 굴을 뚫어서 계천물을 대관대리 들에 물을 대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물고개’, 또는 ‘수현(水峴)’이라고도 한다.
‘새삼밭골’은 마당재에 있는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골에 새삼이라는 풀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고, ‘소등애골’은 쟁골 안에 있는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골이 소 등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으로 마당재와 통하고, ‘숲밖’은 중금리 3반에 속했던 마을로 숲이 울창하여 군량골에서 보면 숲 밖의 마을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양짓말’은 중금리 1반에 속했던 마을로 능머루 우측 양지쪽에 마을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짝바우’는 중금리 1반에 속하는 곳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한 쌍의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쌍암(雙岩)’이라고도 하고, ‘탑둔지’는 통일신라 때 절터로 추정되는 곳에 2개의 3층석탑이 있어서 붙여진 마을명으로, 수몰로 인하여 현재 이 탑은 구방1리 망향의 동산으로 옮겨져 있고, ‘한치고개’는 중금리에서 옥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응달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 또는 고개가 높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치(大峙)’라고도 한다.
인 터 뷰 ∥ 김 철 수 중금리 이장 “주민들과 합심 영농조합 만들어 소득사업 펼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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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성뉴스 | 중금리 김철수 이장은 이 마을 출신이지만, 화성초등학교와 횡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원주에서 졸업한 후 하사관으로 6년여 군복무를 하고, 전역 후 일방행정직 지방공무원으로 정선 및 사북 등과 횡성군 둔내면 및 갑천면 등에서 근무하다 원주시청 근무를 끝으로 지난 2000년 말 공직에서 명예퇴임 했다.
이후 원주 자유시장번영회 근무 및 자영업 등에 종사하다, 지난 2009년 부친께서 돌아가신 후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자 귀향해 농업에 종사하며, 내 농토 및 임대농지를 포함 2000여 평의 밭에 고추·참깨 등과, 지난해엔 이웃 사과재배농의 자문을 받으며 사과나무 250여 주를 심어 내년부터는 수확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 이장은 올해 처음 마을이장을 맡은 1년차 이장으로, 농업에 종사하며 큰 도움이 될 듯 싶어 지난해엔 횡성군농업인대학 기후변화반을 수료하고, 올해는 향후 마을관광사업에 도움이 되고 필요할 듯 하여 6차산업반에 지원해 수강 중으로, 가족으로는 81세 되신 어머님을 모시고 부인 손옥기(55)씨와 2녀1남의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김철수 이장은 “마을주민들과 잘 협심해서 서로 아무런 문제없이 앞으로도 화목하게 마을을 끌어나가고 싶다”며 “임기내 기회가 되고 주민들과 뜻이 합쳐지며 의견이 통합되고 또 규모가 갖춰지면, 공동 영농조합을 만들어 소득사업을 펼쳐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