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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미국에 나타난 유관순 열사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18년 04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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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승 현 민족사관고등학교 재학 |
| ⓒ 횡성뉴스 | 얼마 전 뉴욕타임즈에서 유관순 열사에 관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다.
역사 속의 위대한 여성들을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기사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생애와 3.1운동에 그녀가 끼친 영향에 대한 내용들이 자세하게 실려 있었다.
뉴욕타임즈가 선정하는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 속의 위대한 여성’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가 동양 최초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주목받지 못했던’이라는 글귀에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잠시. 지금까지 학교에서 받았던 역사 수업에서 ‘유관순’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외국에서는 ‘위대한 여성’으로 추앙받는 유관순 열사를 언급조차 않는 한국사 교과서가 있다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유관순 열사는 3.1운동에 투신하신 인물 중 가장 대표적인 분이시다. 1902년 천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1919년 3.1운동 발발 당시 이화학당의 학생이었던 그녀는 3월 5일부터 숭례문에서 열린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10일 일제가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막기 위해 학교를 폐쇄하자, 그녀는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만세를 부르다 일제에 의해 체포되었다.
옥중에서도 그녀는 독립운동가들의 석방을 탄원하며, 폭압적인 일제의 관원들을 윽박질렀다고 하며, 일제의 신민(臣民)임을 인정하라는 재판장의 회유에 분개하여 의자를 집어던지고, 옥중에서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는 등 독립을 향한 의지를 굽히지 않다가 결국 옥사하였다.
만으로 16세의 소녀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독립을 강하게 열망했는지 보여준다.
위에 서술한 유관순 열사의 일생은 일부 일화와 야사들을 제외하고는 뉴욕타임즈에 실려 있는 내용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해외의 신문이 이 정도인데, 그렇다면 국내의 교과서는 어떨까? 상술했듯 필자는 중학교 한국사 시간에 유관순 열사에 대해 그리 많은 내용을 배우지 못하였다. 혹시나 싶어 고등학교 검정 한국사교과서 8종에서 유관순 열사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총 8종의 교과서 중 유관순 열사에 대한 설명을 실어 놓은 교과서는 총 6종, 그중에서도 2종은 이름만 언급되는 수준에 그쳤다.
나머지 2종에서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물론 교과서에서 특정 인물에 대한 사설을 길게 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유관순 열사를 열외로 두고 어떻게 3.1운동을 논한단 말인가.
3.1운동 도중 7000명의 사람들이 일제에 의해 살해당했다. 4만6000여 명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수많은 이들이 옥에서 고문을 받아 한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거나 옥사하였다고 한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민족 대표 33인 중 변절하여 나라를 팔아먹은 최린과 같은 인사들보다 이 5만3000여 명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이 5만3000여 명을 전부 기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일제에 의해 많은 기록들이 말소되어 알려진 인물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분들을 대표할만한 유관순 열사는 단지 16세의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이 5만3000여명을 대표하는 조선의 얼, 대한의 얼이다. 어떻게 반민특위에 기소된 인물로 최린을 언급하면서 3.1운동의 참여자로 유관순 열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3.1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민족의 독립을 선언한 33인이 아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러고도 나라를 위해 바칠 것이 당신들의 목숨뿐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워 한 5만여 열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타국에서 이러한 분들을 대표하는 이에 대해 칭송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유관순 누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고 자라왔다. 어른들은 언제나 필자에게는 ‘누나뻘’이신 분이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나섰다며 그분을 본받으라고 가르치셨다.
필자는 올해로 유관순 열사의 나이를 넘어선 17세가 되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그분의 숭고한 뜻은 단순히 나이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유관순 누나를 본받으라던’ 가르침은 나이와는 상관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 민족에게, 유관순 열사는 미래를 열어주신 ‘영원한 누님’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그분의 독립정신과 평화정신의 깊은 뜻을 기억하고 있는가. 언니도, 누나도, 여동생도, 딸도 아닌, ‘유관순 열사’의 뜻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 시대에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묻고 싶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18년 04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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