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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풍루 밑을 본 모습. 멍에가 휘었고, 바닥에 깔린 목재는 탈락·곰팡이로 손상됐다. |
| ⓒ 횡성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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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을 맞아 횡성군 관내 곳곳에 행락객들이 찾아오는 가운데, 주요 관광지로 소개된 3·1공원에 위치한 태풍루는 221년의 역사를 가지고도 파손된 채 방치됐다. 마루는 목재가 탈락했고, 지붕 기왓장은 처마로 밀려 자재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관리의 손길은 미치지 못했다.
태풍루는 정조 22년(1798년)에 건축됐다. 정래승(鄭來昇) 현감(縣監)이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시화년풍(時和年豊)을 기원하며 흉년·괴질·재난과 악정 등의 민생고를 없애고자 건립한 누각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또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배움터로 활용됐다.
주민 A(82)씨는 “횡성초등학교 37·38회 졸업생들이라면 태풍루에서 공부했던 때를 기억할 것”이라며 “교항리에 소학교가 있었지만, 공간이 협소해 당시 유맹수 선생과 초등생 30∼40명이 책걸상에 앉아 태풍루에 모였다”라고 말했다.
횡성문화원에 따르면 태풍루의 원위치는 현재 횡성군청 뒤편 읍하리 석불좌상·삼층석탑이 있는 자리로 1952년 노후로 무너졌다가 40년 후인 1992년 복원 건축됐다.
횡성문화원 관계자는 “태풍루에 관한 별도의 자료는 없지만, 한국전쟁 당시 그 자리를 지켰으나 번개 등 자연 현상으로 붕괴했던 것으로 안다. 또 좀 더 돋보이도록 현재 위치에 복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80세 이상의 노인들은 태풍루에서 놀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풍루가 담은 의미는 1982년 ‘횡성태풍문화재’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횡성군 대표 상징물로 소개됐다. 그러나 현재는 관람객의 행위만 금지하는 빛바랜 경고판만 세워져 있을 뿐 건물 자체에 대한 보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난간으로 이용된 치마널과 돌란대 목재는 뒤틀려 균열과 이음새 틈이 벌어졌고, 태풍루 주변에는 처마에서 떨어진 자재들이 방치됐다. 또 마루에는 곰팡이가 피고 바닥을 지탱하는 멍에도 휘었다.
횡성군은 태풍루가 복원되는 과정에서 전통방식이 아닌 그 당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방법으로 복원 건축되면서 균열과 이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는 안전상 출입을 차단한 상태로 밝혔다.
군 기획감사실 관계자는 “지정 문화재가 아닌 태풍루는 보수에 필요한 예산 확보에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이 때문에 몇 번의 보수가 있었지만, 대부분 악화를 막기 위한 긴급 보수였다”며 “태풍루는 못질이 보이는 등 과거의 불안한 복원 흔적이 보인다. 이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목재 사이에서 균열과 이격이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 지정 부재·인력 부족으로 주기적인 관리는 어렵지만, 지역 문화재로 보존될 수 있도록 관리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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