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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79) 『 역사와 문화 이야기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12월 09일

↑↑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횡성뉴스
역사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알져줌으로써 미래를 판단할 수 있게 한다고 정치가 토머스 제퍼슨는 말했다.

역사가 있는 곳에 문화가 있다. 국가의 고유 정서에 맞는 구수한 문화는 정체성이고 미래 유산이 된다. 돈은 말 그대로 돈다하여 화폐 단위를 ‘환’이라 했는데 역시 순환의 뜻이 있다.

현재 쓰이는 화폐 ‘원’도 둥글다는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동전의 둥근 원은 하늘을, 사각형은 땅을 상징하여 우주 만물의 이치를 담았다.

땡전 한 푼 없다는 말에서 땡전은 당백전이고, 푼은 엽전 한 닢을 가리킨다. 헬레니즘 시대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정복지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동전에 그의 얼굴을 새겨 외딴 변방의 농부들조차 대왕의 이름과 얼굴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세시풍속 문화가 이채를 띤다. 설날에 세배를 하면 어른들은 덕담을 건네는데 반드시 과거 시제로 말했다. “올해 합격을 축하한다.” “자넨 올해 사업이 아주 잘 풀렸다며!.”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것처럼 말하면서 한 해의 축복을 빌어주는 멋진 문화 풍속이었다. 국가기관 ‘도화서’는 시험에 합격된 화가들이 임금의 초상화, 국가행사 등을 기록화로 남겼다.

우리나라 전통 화법으로 자유롭게 그려진 작자 미상의 그림들이 민화인데 일반적으로 서민들이 복을 부르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 집에 걸어두었다.

정의로운 서울의 상징 ‘해치’는 한국 전통민화에서 비중이 크다. 해치는 동물로 무섭지만 선악을 구별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능력이 있어 법과 정의를 상징했다. 불법 행동한 사람을 뿔로 공격한다.

국회의사당, 대검찰청에도 해치상이 있는데 한결같이 옆으로 앉아 고개를 돌리고 있는 형상은 사람들을 노려보기 위함이다. 해치는 물에 살아서 불을 막아주는 힘이 있다.

조선 건국 직후 정도전은 한양을 수도로 하고 경복궁 자리에 궁을 짓자고 하였지만 관악산 화기(火氣)가 문제였다. 따라서 경복궁과 광화문 앞에 해치상을 세웠다.

조선시대의 대부분 현판은 가로로 제작되었는데 유독 숭례문 현판만 세로이다. 이는 관악산의 화기를 내리찍듯 눌러 막아주기 때문이다.

봉황은 어진 임금의 정치를 상징한다. 봉황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모습을 보인 요순시대는 두 임금 모두 덕으로 천하를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내가 네 봉이냐?” 이 말의 유래를 보면 김선달이 길에서 큰 닭을 파는 장사꾼을 만나 김선달이 “그거 봉이 아니냐?”고 묻자 닭 장수는 수탉이라고 하였다.

재차 정말 봉이 아니냐면서 정말 봉이면 비싼 값에 사려고 했다고 말하니 장사꾼은 갑자기 봉이 맞다고 거짓말을 하며 비싼 값에 닭을 팔아 버렸다. 이때부터 봉은 어수룩해 이용해먹기 좋은 사람을 말했다. 갑자기 봉이 김선달이 되었다.

건강과 장수을 기원하는 그림 중 잘 알려진 것이 <수성노인도>이다. 어르신들께 선물로 좋다. 우리 조상들은 우주에 있는 별들 중 수성(水星)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성이 밝게 빛나면 임금과 백성이 오래 살고 행복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수성노인의 존재를 만들어냈다.

작은 키에 긴 이마을 하고 사슴을 타고 다니며 손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다.
잃어서는 안되는 땅 독도와 잃어버린 땅 간도가 있다.

간도는 현재 중국의 영토이며 중국 현지에서 연길도라고 부르는 지역이나, 과거 조선의 영토였다. 백두산 중턱에 비석 ‘백두산정계비’가 있어 ‘서위압록 동위토문’ 즉 서쪽 압록강을경계로 청나라와 조선의 영토가 나뉘고 동쪽으로 토문강이 지표가 된다고 기록하였다.

1903년 고종 황제가 북간도를 함경도에 편입하고 간도 관리사 이법윤을 파견하여 세금도 거두어 간도가 조선의 땅임을 분명히 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본은 북간도를 이용해 청나라와 외교협상을 통해 간도협약을 맺어 광산채굴 권리를 받고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면서 간도가 청나라 땅이 되었다. 간도의 교훈은 땅을 한번 빼앗기면 돌려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역사와 문화 이야기는 우리의 정체성으로 면면히 이어가야 할 대목이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12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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