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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121)『효도의 감동적인 실천사례』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2월 07일

↑↑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횡성뉴스
효(孝)란 부모님을 사랑(愛)하고 공경(敬)하며 섬기는 것(事) 즉 애경사(愛敬事)로 인간의 모든 행동의 근본이다. 공자님이 쓴 효경에 “천지 자연 생명 중 사람이 귀하니 사람의 행위 가운데 효(孝)보다 더 큰 것이 없다.” 라고 하였다.

한 명의 아버지, 어머니가 100명의 스승보다 낫다. 효도의 종류에 양지(養志)는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는 효도이고, 양구체(養口體)는 부모님의 입과 몸을 봉양하는 육체적 물질적 효도이다.

모두 중요하지만 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양지’의 효도이다. 효도의 방법으로 “좋은 부모를 원한다면 먼저 착한 자녀가 되어야 한다.” 주자십회(朱子十悔)에 보면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로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해도 늦으니 살아계실 때 효도하라는 것이다.

지구가 멸망하여 다른 별나라로 간다면 무엇을 가져 가겠는냐의 질문에 “효와 경로사상이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가족제도”라고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 박사는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를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 아들 딸, 손자’의 3대 가족 모임이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살벌한 교전 중 북군 진영에서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 노래가 연주되었다.

남군 북군 모두 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러 전의(戰意)를 상실해 그 날은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가족의 사랑이 전쟁보다 강하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은 한국 전통사회의 사회윤리 기본덕목으로 항상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 화목하며, 나라에 충성하고, 사람사이의 믿음을 강조하였다.

부모님에 대한 충을 효라고 한다. 모든 예절의 근본은 효도이고 예절의 시작은 효이다.
즉 충이 효이고 예절이 효로서 결국 ‘충효예(忠孝禮)’는 같은 뜻이다. 자식이 효도하면 두 어버이가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잘 이루어진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평창군 대화면 계촌리에 경주 최씨 시조(始祖)인 고운(孤雲) 최치원(신라시대 대학자) 선생의 후손인 최상목(崔相睦)님이 계셨는데 부모님에게 효성이 대단히 지극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담종(痰腫)으로 온 몸이 붓고 종기가 생기는 병으로 위중하여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치료했으나 효험이 없자 자나 깨나 걱정이 많았다.

일구월심 아버지만 생각하며 농사 일손도 놓고 식사도 거르며 하루 수십리 걸어 다니며 좋다는 약은 모두 다 준비해서 지어드렸지만 약 효과가 없자, 아예 며칠동안 곡기(穀氣)도 끊고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백발의 노인이 다가와서 빨간 빛이 나는 대추 3개를 주면서 이것이 담종에 좋은 약이니 큰 차도가 있을 것이라 말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나자 아침 끼니도 잊은채 극도로 지쳐 비틀거리는 무거운 몸으로 오일장(五日場)이 서는 봉평, 대화 등 사방을 다니면서 바로 꿈에 본 것과 크기와 색깔이 아주 비슷하게 생긴 대추 3개를 구하고, 한약방에서 다른 좋은 약재도 구입하여 함께 한약 한재를 탕약으로 정성껏 지어 드렸더니 서서히 차도가 있었고 몇 달 후에는 담종(痰腫)이 기적같이 완치가 되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

이는 아들의 효행심이 하늘을 찔러 신령님께서 감응하신 일이었다. 얼마 후에 최상목씨의 효도 실천사례를 높이 기려 1919년 계촌 향리에서 유림들이 서울 성균관에 추천하여 모성공회(慕聖公會)가 감동적인 효행의 공덕을 기리는 효자문(孝子門), 높은 비석 및 비각(碑閣)을 세웠고 찬양문(讚揚文)을 만들어 주어 임금님께서 효자 충신 열녀가 있는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정려(旌閭)를 대신하였다.

그 당시 계촌 고을은 경사가 났고 평창은 물론 강원도를 너머 전국의 효(孝) 실천의 산 교육장이 되었다.

고(故) 최상목님의 아드님 최현필씨는 현재 횡성군 둔내면 영랑리에서 선친의 효도 실천사례를 높이 선양하고 늘 추모하며 효(孝)란 사람이 지켜야 도리 중 첫째가 봉친(奉親)으로 어버이를 받드는 효성심의 모범을 문중과 집안 및 온 마을 주변에 보여주어 경주 최씨의 훌륭한 미담사례의 불씨를 살렸으며 횡성이 충효예의 고장임을 드높이고 계신다.

과거 경주 최씨의 최부자 일가(一家)는 조선 중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300년 동안 12대까지 엄청난 부(富)를 빈민구제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경주 최부자 일가의 가훈은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로 조상 대대로 경주최씨 종가는 효도, 애국, 나눔과 배려를 몸소 실천하였는데 이와 함께 고(故) 최상목님 문중도 훌륭한 효도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불초(不肖)란 부모님에 비하여 덕망이나 인격이 모자라서 부모님같은 효도를 못함을 죄송하게 여기며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중국의 순(舜) 임금은 그의 아버지에게 효자였으나 순 임금의 아들은 효자가 아니었다는 순지자역불초(舜之子亦不肖)가 있었다.

고(故) 최상목님의 아드님 최현필씨도 역시 자신이 불초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효도 정신을 실천하면서 경주최씨 문중의 영광과 명예를 재현하며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첫째 효이고, 악한 행동을 하여 부모의 이름에 오점을 남기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둘째 효이며, 부모님의 의식주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잘 살피는 일이 셋째 효이다.


신라시대 상덕(尙德)이라는 효자가 있었다. 어느 해 흉년에 열병까지 유행하여 어머님께서 굶주려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상덕은 정성으로 음식을 해드렸지만 더 이상 힘들자 어머님은 자리에 누웠다. 상덕은 입술을 깨물고 칼로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어머님께서 잡수시도록 하였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물훼물상(身體髮膚 受之父母 勿毁勿傷)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에서 받았으니 훼손하지 말며 상하게 하지 말라!” 그러나 상덕은 자신의 몸보다 효도가 더 우선이었다.

이 소문을 알게 된 임금님은 상금을 후하게 내리고 상덕의 집에 효행을 기리는 효자문을 세웠고 효자깃발을 달며 비석을 세워 이 효도 사례를 기렸다.

남녀노소 누구나 효심을 함양하고 효행을 실천하면 어린이,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이 바로 되어 훌륭한 인격형성으로 각자 인생에서 행복과 성공을 누리고, 가정 화목, 학교 교육이 바로 되고, 패륜행위 및 생명경시 예방으로 사회 안정, 국민행복, 세계평화와 인류 행복으로 연결될 것이다.

다시 한 번 효행심이 지극한 고(故) 최상목님의 효행심을 숭고하게 추모하며, 효도는 대한민국의 얼굴이요, 인성교육의 바탕이고, 바르게살기운동이며, 동방예의지국을 되찾는 지름길이란 것을 재조명해본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1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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