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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의 횡성수설 橫城竪說 (19)
잘못을 인정하면 다툼이 없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3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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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철 영 편집국장 |
| ⓒ 횡성뉴스 | 변명은 해명이 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은 아이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거짓말하지 않고 사실대로 얘기하면 대부분 너그럽게 타이르고 용서하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변명을 하고, 변명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에는 따끔하게 혼을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뉘우침이 없다는 것이고, 뉘우침이 없으면 그러한 일은 언제든지 습관처럼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이런 가르침을 받고 자라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위선과 욕심을 배우게 된다. 어른이 되면 스스로 깨우치기 전까지 가르침이 잘 통하지 않고 어른이 될수록 어릴 때의 순수함을 점점 잃어버리게 된다.
프로이드의 꿈 해석 이론에 의하면 어린아이들의 꿈은 욕망이 그대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면 짜장면 먹는 꿈을 꾼다. 그러나 어른들의 꿈은 왜곡이 일어난다.
짜장면을 직접 먹는 꿈을 꾸는 게 아니라 짜장면집에서 다른 음식을 먹는다든지 짜장면집이 아닌 곳에서 짜장면을 먹는다든지, 꿈에 등장하는 사람의 얼굴과 이름이 다르게 연결된다든지 하는 형태다.
이러한 왜곡 현상은 무언가를 감추고 싶은 욕망 때문에 생긴다. 어른들은 그만큼 동심의 순수함보다 위선과 욕망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진실은 다른 수식이 필요 없을 만큼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는 마음에 없는 수식(修飾)이 필요하다. 가식(假飾)이다. 마음에 없는 수식은 문학적 표현도 아니고 이해를 돕는 설명도 아니다. 진실을 가리기 위해 덮는 보자기는 변명이거나 거짓말일 뿐이다.
보자기 속에 가려진 진실은 자꾸 삐져나오려고 하고, 그걸 가리자니 또 다른 보자기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변명이 변명을 낳고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
진실을 가리는 보자기 한 장 걷어내면 그만인 것을 자꾸 덮으려고 하니 필요 없는 보자기만 늘어난다. 진실은 가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그걸 억지로 가리려 하면 결국 처지가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다툼이 잦다 사소한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는 어느 한쪽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세상을 살다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다툼도 잦다.
다툼은 서로에게 피곤한 일이라 최소한으로 그치는 것이 좋지만 그게 쉽지 않다.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르고도 인정하기는 싫고, 말싸움이나 우격다짐에서도 지는 것이 싫으니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애를 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다툼이 잦을 수밖에 없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란 말은 남들한테만 적용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싸움은 길어지고 괜한 스트레스만 쌓이게 된다.
우리는 인정할 것을 인정하는 사회에 익숙하지 않다. 극단의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어 세상은 오로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는 일은 다 옳고 남이 하는 일은 시시콜콜 마음에 안 든다. 특히 정치판을 보면 더 그렇다. 갈수록 칭찬에는 인색하고 비판에는 예민해진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존경받는다 살다 보면 잘못하는 일이 많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 생각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후로도 잘못하는 일은 또 생길 것이다.
일부러 실수하는 사람은 없다. 악의가 있거나 잘못인 줄 알면서도 행하는 것은 범죄다. 그렇지 않은 실수라면 대부분 용서가 될 텐데 그걸 못 참고 바득바득 우기는 사람들은 용서받지 못한다.
누구나 하는 실수,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것이 진심이라면 용서 못 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보라. 특히 권력을 가진 자들 중에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잘못을 알면서도 우기는 뻔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람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당당한 듯 살아갈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보니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용기가 됐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을 대단하게 여기고 신뢰와 존경을 보내게 된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3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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