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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명 철 횡성군체육회장 (전 군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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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성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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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경기도 의정부에서 객지 생활을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바레인 공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축산업자로 살면서 횡성한우축제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오랜 객지생활 후에 귀향했지만 지역주민들은 그를 군의회로 보내 민의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겼다.
8년 의정생활과 군의장, 횡성한우축제위원장, 그리고 지금의 횡성군체육회장에 이르기까지 그는 고향 횡성을 위해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농민운동을 하면서 농가부채의 심각성을 보고 그레이더 보급사업과 농기계임대사업을 추진하는 등 자랑할 만한 것도 많은데 이게 다 군민들이 믿고 밀어준 덕분이라고 한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얘기에는 횡성을 위하는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객지에서 살다 서른에 귀향, 학연 없이 군의원 재선 13년 동안 동네 눈 치우고 논밭 갈아주기도
횡성에서 태어났지만 6살 때 부모님 따라 의정부로 이사해 그곳에서 학교 다녔다. 1983년 서른 살에 고향에 와 38년째 살고 있다. 젊은 날을 객지에서 보냈는데 학연·지연 없이 군의원에 당선되고 의장까지 됐다. 군민께 감사드린다. 혈연·지연·학연만 내세우면 귀농귀촌인들은 설 곳이 없다. 귀농귀촌인도 횡성군민이다.
선거라는 게 혈연·지연·학연에 의존하는 게 크지만 이것을 선거전략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통치철학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다.
고향에 와서 보니 객지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이방인, 귀촌인 같은 기분도 들었다. 지역에 적응하고 동화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낙농을 하다보니 우유차가 매일 드나드는데, 눈이 많이 오면 이장이 방송을 하고, 주민들이 나와서 눈 치우고 그랬다. 그래서 트랙터에 그레이더를 사서 달고 13년 동네 눈을 치웠다. 나 하나 고생하면 많은 사람이 편하게 된다. 나중에 의회에 들어가서 그레이더 지원하는 사업을 만들었다.
트랙터 없는 분들 돈 한푼 안받고 논밭을 갈아드렸다. 어떤 분이 고맙다고 마늘 한 접, 기름 한 병 갖다주셨는데 몇 번 사양했지만 기어이 놓고 가셨다. 먼저 다가가니까 다 되더라. 내가 뭐 이쁘다고 군의원에 두 번이나 당선시켜줬겠나.
중동 붐이 일 때 바레인에서 사회생활 첫발
막내로 태어났는데, 군 제대하고 보니 집에다 돈 달라 소리를 못하겠더라.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려고 청계천에 있는 친구한테 찾아갔더니 세운상가에 있는 전기판매조합을 소개해줬다.
한 달에 20만원 받기로 하고 열심히 일했다. 한 달 후 전무가 일하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10만원을 더 주겠다고 하더라. 거기서 6개월 일하다가 바레인으로 갔다. 그때 형님이 바레인 공항에 있었는데, 형님한테 돈 벌겠다고 매달렸다.
중동 붐이 한창일 때였지만 특별한 기술도 없고 영어도 안돼서 못간다고 했다. 부모님 연세도 있고, 나도 살아야겠으니 방법을 찾아달라고 매달렸다. 형님은 힘든 일도 하겠냐, 노무자로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가겠다고 했더니 인천에 있는 영진공사를 소개해줘 바레인 공항에서 일하게 됐다. 6개월 동안 여객기 청소만 하다가 사무직으로 갔는데 더 힘들었다. 서류가 모두 영어나 아랍어로 되어 있으니 갑갑했다. 퇴근하면서 서류를 몰래 가지고 와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때 바레인 대사 조카인 문부상씨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한국사람이 돈 벌러 와서 외국인한테 무시당하면 안된다며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가르쳐줬다. 그러다보니 6개월 후에는 한국에서 오는 사람 가르치게도 되더라. 그때 월급이 150만원이었는데 한국에서 벌던 돈에 비하면 꽤 큰돈이었다.
바레인에서 돌아와 고향으로 와서 축산을 시작했다. 한우를 키운 지 6개월 만에 전경환 사건으로 한우값이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할 수 없이 한우를 팔고 젖소 4마리를 사 낙농을 시작했다.
조태진 군수가 당선되기 전에 횡성은 낙농이 대세였다. 동네 친구가 많이 도와줬다. 그렇게 낙농을 20년 하다가 또 한우로 또 바꿨다. 브루셀라 백신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 낙농을 할 수가 없었다.
횡성에서 한우교육은 공근에서 처음 시작 조태진 군수님의 횡성한우 철학 존경
오산리 한 축산농가에서 낙농교육만 하지 말고 비육교육도 해달라고 했다. 그때 비육하는 사람이 4명밖에 안돼 한우농가도 같이 하기로 했다. 비육은 젖소나 한우나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공근면사무소에서 한우교육이 처음 시작됐다.
당시는 전산화된 축산농가 자료가 없어서 각 읍면을 돌아다니며 5두 이상 키우는 농가를 조사해서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우리나라 최초로 거세우 고급육은 양평 개군한우였다. 개군한우 기술지도 해주던 사람을 초빙하고 견학도 다녀오면서 횡성에서 처음으로 고급육 교육을 하게 된 것이다.
조군수님은 낙농보다 한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책을 펼쳤다. 조군수님은 철학이 있었다. 관광문화자원이 없어 절박한 심정으로 횡성한우 명품화 사업을 시작한 거다. 횡성군민 어떻게든 먹고 살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래서 나도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면서 협력했다.
한우에 관한 일이라면 뭐든지 다 들어주셨다. 퇴임하신 뒤 고맙다고 말씀드렸더니 “너 혼자 먹고살겠다고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잖나. 횡성축산 전체를 위해서 건의하는 건데 그걸 어떻게 안해줄 수 있나” 그러시더라.
횡성한우도 앞으로 5년이 중요하다, 변화도 필요하고, 한몸이 돼서 가야 하는데 축협과 자꾸 갈등이 생기는 걸 보면 안타깝다. 위기의식을 못느끼는 거 같다. 지금은 소값이 좋지만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코로나로 해외 못나가고 외식도 잘 못하니까 집에서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앞으로 5년 후에는 수입육과 경쟁을 해야 한다. 어떻게든 횡성한우 말고 또 한세대가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태풍문화제를 횡성한우축제로 바꾸자 제의
조태진 군수님 11년 임기중 2년 남았을 때였다. 조군수님께서 횡성한우축제 명품화사업을 추진해왔는데 다음 군수 누가 되느냐에 따라 횡성한우가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 그래서 누가 군수가 되든 횡성한우가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일관된 한우정책을 이어갈 장치 필요하니 태풍문화제를 횡성한우축제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 횡성한우도 계속 가고 소비자나 군민이나 축산관계자들이 군수님 퇴임해도 사람들이 기억할 거라고 말씀드렸다. 얼른 대답을 안하시더라. 담당공무원을 6개월 쫓아다니며 하자고 했는데 안된다고, 망한다고 했다.
축제 전문가인 채용식 교수, 군지부장과 같이 가서 얘기해도 안먹혀서 군수를 찾아가 말씀드린 거다. 조군수님도 주변의 의견을 들어보시고 내 손을 잡으면서 한번 해보자고 하셨다. 채용식 교수를 찾아가 한우축제 그림을 그려주시고 시작해달라고 했다.
횡성한우축제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이어온 거다. 조태진 군수님이 참 고마웠다. 그분 결단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안됐을 것이다.
의회 전문성 살리려면 3선, 4선 의원도 있어야
축산농가들을 대변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의회에 들어갔다. 8년 의정생활을 하면서 돈도 많이 까먹었다. 소를 길렀으면 부자가 됐을 텐데. 처음 의회에 들어가서 정말 공부 많이 했다. 행정쪽에서 우리보다 많이 안다. 지역대표로 뽑아줬으니 주민들이 원하는 걸 해결해줘야 하는데 그러자면 공부를 안할 수가 없다.
월요일 군청 간부회의는 꼭 챙겨봤다. 군정 흐름을 알기 위해서다. 행정을 무조건 질책하기보다 공감대 형성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보좌관이 있지만 우린 없다. 내가 5,60% 해놓고 전문위원한테 도와달라고 해야지 처음부터 해달라고 할 수가 없다. 공부해서 자료 만들고, 근거를 가지고 따졌다. 그러면 공무원 반응이 달라진다.
남양주시청에 근무하던 형님에게 조언을 많이 받았다. 공무원한테 모르면서 함부로 하지 마라. 공무원들 말 한마디 하면 다 알아듣는다. 잘하는 것부터 칭찬하고 나중에 문제를 지적하라고 했다. 나는 어떤 이슈가 있으면 같이 풀어가기 위해 다른 지자체 사례를 많이 연구했다.
공감대를 만들면 방법이 나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원들이 공부 많이 해야 한다. 지금 의회도 4선도 3선도 하나 있어야 제대로 돌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전문성 떨어지고 위계질서도 안잡힌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도 이유가 있다. 경륜이 많은 사람이 콘트롤타워가 돼서 잘못된 것도 잡아주고 그래야 한다.
모든 정책의 중심은 인구 증가, 고민하는 정책 안보여
횡성군은 강원도 최고 고령화지역이다. 횡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모든 정책은 인구를 늘리는데 중심을 두어야 하는데 고민하는 정책이 안보인다. 인구는 정주인구와 유동인구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봐야 한다.
정주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젊은 횡성을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를 위한 정책. 신혼부부에게 아파트 한 채씩이라도 줄 수 있는 파격적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 정책을 받아서 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생색내기 위해 부서별로 조금씩 주다보니 효과가 미미하다. 군 1년 예산이 6000억인데 이중 1%만 쓰면 아파트 반값 공급도 가능하다.
군수가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거다. 신혼부부는 2+알파다. 유동인구 증가는 둔내에 답이 있다. 결국 관광산업이다. 핵심 관광시설이 필요하다. 이제 경치관광시대는 끝나고 대세는 체험관광이다. 찾아서 해야 하는 게 공무원인데 전문가를 안키운다. 밖으로 내쫓아서라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공무원한테 자꾸 나가라고 했다.
나중에 예산결산할 때 예산 남으면 왜 공무원 많이 안보내고 예산을 반납하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공무원들 해외 많이 보내는 게 돈 버리는 게 아니다. 술집에 가서 잘 디자인 된 컵 하나를 보더라도 본 사람과 안본 사람은 다르다. 나도 27, 8개국 다녀봤는데 이게 의정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체육이 곧 최고의 복지다 초대 선출직 체육회장 임기가 3년인데 벌써 1년이 지났다. 스포츠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체육이 곧 최고의 복지라는 것이다. 체육을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면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횡성은 체육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다. 시설 활용도를 높여 군민의 건강한 생활을 보장하고 또 지역경제와 맞물려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다 묶였지만 이게 풀리게 되면 전국의 체육회를 상대로 홍보할 생각이다.
그의 인생 역시 파란만장했다. 중동근로자에서 축산업자, 농민운동가, 군의원, 한우축제위원장, 민주평통의장, 횡성군체육회장까지, 어떤 자리에 있어도 그는 최선을 다하며 횡성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축산업을 계속했더라면 큰 돈을 벌 수도 있었을 텐데 8년간 의정활동하면서 집에 생활비를 한푼도 못대줬다며 아내에게 미안해한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집안살림을 이끌어준 아내가 제일 고맙고, 아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버지로 여겨줘서 고맙다고 한다.
중학교때 축구선수로 활동할 만큼 운동을 좋아하는 그가 횡성군체육회장이 됐다. 지금은 코로나로 주춤하고 있지만 합리적인 생각과 공부하는 자세로 살아온 만큼 횡성군 체육계에서도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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