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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횡성군민 만세운동 102주년의 의미

일제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횡성군민,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4월 15일

올해 102주년을 맞은 4·1횡성군민 만세운동 기념식이 4월 1일 횡성보훈공원에서 거행됐다. 2019년 4.1 횡성군민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라 특별히 당시 만세운동 재현을 포함해 대규모 행사로 진행됐으나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행사가 전면 취소된 바 있다.

올해 4.1횡성군민 만세운동 기념식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는 바람에 200명만 참석하는 소규모 행사로 진행됐다. 특별히 올해 기념식에는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가 장신상 군수 초청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전세계에 유래없는 최대규모 비폭력 저항운동
한 전 부총리는 특별기념사에 앞서 기념식 행사의 진행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4.1횡성군민 만세운동 기념식은 순국선열이 후손들이 주인공이 되어 말씀도 하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정작 그 후손들은 손님처럼 한쪽에 귀퉁이에 앉아있고, 지자체장을 비롯한 국회의원, 도·군의원, 기관단체장들이 내빈석을 차지하고 있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내년 행사 때는 이런 것을 개선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진 기념사에서 한 전 부총리는 3.1만세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되새기고, 전세계에서 유래없는 우리 민족의 비폭력 저항운동이 당시 식민지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감동과 함께 큰 영향을 끼친 사실을 강조했다.

3.1만세운동은 우리나라 인구의 10%가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다.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도시에 사는 사람이나 농촌에 사는 사람이나, 남녀노소 구별도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일본 헌병의 총칼 앞에서도 철저하게 비폭력, 평화시위로 맞섰다.

간디, 타고르, 호치민을 감동시킨 만세운동
이로 인해 인명피해는 엄청났지만 세계사에서 큰 획을 그으며 약소국가 국민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인도의 간디는 우리의 3.1운동의 비폭력 저항운동에 감동을 받았으며, 간디의 절친한 친구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타고르는 한국을 ‘동방의 횃불’이라는 명시로 예찬했다.

또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는 호치민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리강화회의에서 만난 김규식 선생으로부터 3.1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감동한 나머지 김규식 선생을 수시로 찾아가 조언을 들을 정도였다.

중국 북경대학교 학생들은 우리가 3.1운동으로 일제에 저항한 데 비해 같이 억압받던 중국인들은 무력했다며 그해 5월 4일 오체투지로 회개하고 자성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100년 전에 세계를 감동시켰던 3.1만세운동 정신이 오늘 한국에서 죽었다며, 이를 죽인 것이 누구냐고 물으며 다 같이 반성해야 한다는 말로 기념사를 마무리했다.

100년 전 만세운동 정신은 살아 있는가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전국으로 퍼져나간 만세운동은 4월 1일 횡성으로 이어지고, 횡성의 만세운동은 강원도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수많은 횡성의 우국지사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총칼에 희생당하면서도 횡성의 만세운동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4.1횡성군민 만세운동을 기점으로 일제와 싸우는 횡성군민의 애국심과 단결력은 더욱 단단해졌다.

이로 인해 횡성은 애국충절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1945년 독립을 맞이하기 전까지 전방위에 걸친 일제의 수탈에도 굴하지 않고 특유의 단결력을 과시하며 횡성을 지켜왔다.

일제강점기에 결성된 횡성상인조합은 장사를 함에 있어 이익보다 민족을 우선시했다. 아무리 이익이 많이 남아도 일본인과의 거래는 거부했으며 횡성사람끼리 팔고 사는 것을 공개적으로 권장했다.

이렇게 횡성에서 일본상인들은 자리잡지 못하게 함으로써 횡성의 상권을 지켜냈다. 소문난 개성상인보다 한 수 위라는 횡성상인의 이야기에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우리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4.1횡성군민 만세운동으로 일제의 총칼에 맞서 싸운 횡성군민들. 이익을 포기하고 일본상인에 맞서 횡성의 상권을 지켜낸 횡성군민들. 애국의 고장이라는 명예를 스스로 만들어 낸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횡성군민들. 그로부터 102년이 지났다.

우리가 싸워온 일본은 횡성에 없고, 애국심은 애향심으로 바뀌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남녀노소, 계층 구분이 없던 것처럼 횡성을 사랑하는 마음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내 편도 없고 네 편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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