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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140) 『 역발상의 미학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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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 ⓒ 횡성뉴스 | 우리는 늘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집에 살기를 바라는 욕심이 있다. 이른바 상류사회에 머물거나 편입되기를 꿈꾼다.
그런데 노자의 도덕경에는 누구나 그리는 상류(上流)는 인간의 허황된 욕망이 빚어낸 신기루 같은 것일 수 있다고 하며 오히려 아래로 흐르는 하류(下流)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말 큰 나라는 하류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어깨를 으스대지 말고 낮추는 것이 더 위대한 모습이다. 군림하려 하지 마라! 낮춰라! 그것이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다. 강물과 바다가 백곡의 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아래로 흐르기 때문이다. 상류보다 하류가 한 수 위라는 노자의 성찰이다.
쓰는 것이 경쟁력이다. 물론 검소하고 절약해야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돈은 사용할 때 가치가 창출된다. 소유하는 것을 리(利)라고 한다. 그 소유를 없애는 것이 쓰임(用)이다. 소유는 이익(利益)일 뿐이며, 그 소유를 없애는 과정이 용(用)이다.
리(利)와 용(用)은 채움과 비움이다. 쓰려면 우선 채워야 하므로 열심히 돈을 번다. 그러나 단순히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쓰임이 생길 수 없다. 소유를 포기하고 사용할 때 돈의 가치가 만들어진다.
그릇의 용도는 속이 비어 있기에 생기고, 바퀴의 용도는 축이 비었기 때문에 바퀴살이 그 공간으로 들어가 수레가 굴러간다. 만약 비움이 없다면 어떤 용도도 나오지 않는다는 진리이다. 있다는 것은 이익이 되지만, 없다는 것이 진정 쓸모(用)가 있는 것이다.
손자병법에는 병사들의 사기가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한나라 무제 때 곽거병 장군은 3만명 병사들을 이끌고 서역을 정벌하러 나갔다.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졌을 때 중앙의 황제인 한무제가 보내온 술 한 병을 이용하여 사기를 끌어올렸다.
병사들을 오아시스에 집결시키고 “이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라 황제가 우리에게 내려준 술이다. 이 술을 마시고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자!” 비록 술 한 병을 섞은 물이지만 황제가 하사한 술이었다. 곽 장군 혼자 마시는 것을 포기하고 병사들과 함께 하려는 따뜻함이 녹아 있는 술이었다.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전의를 불태웠고 결국 서역정벌에서 성공하여 돌아왔다. 그 후 그 오아시스 이름은 주천(酒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난세의 술보다 맛있는 것은 따뜻한 나눔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간섭하지 말라!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간섭하고 자신의 의도를 강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에게 나의 간섭과 강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며 거리낌 없이 행동으로 옮겨지게 된다.
천지불인(天地不仁), 하늘과 땅은 어질지(仁) 않다. 즉 하늘과 땅은 모든 만물에 대하여 사랑이란 이름으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늘이 비를 내리고 계절이 바뀌는 것은 어떤 사랑의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저 때가 되면 비가 내리고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이치일 뿐, 인간에 대한 목적, 특히 사랑이라는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이 의도되는 순간 사랑에 대한 반응을 요구하게 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도 나를 사랑하라는 것은 구속일 뿐 본질적인 사랑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원리이다. 사랑과 배려란 때로는 강요와 간섭이 아닌 가만히 그대로 지켜만 보아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맹자에 나오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은 집안의 가훈이나 경구로 자주 사용한다. 인(仁)을 가진 자는 적(敵)이 없다는 뜻으로 오역되기도 한다.
본래 인(仁)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다는 뜻이다. 인자이기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적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인자는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기에 결국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난세라도 따뜻한 사랑으로 뭉친 조직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따뜻한 사랑의 네트워크가 어떤 것보다 센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인자는 인정(仁政)을 베푸는 사람이다. 창덕궁 인정전의 유래인 인정은 국민들에게 효제충신의 인간도리를 가르치는 따뜻한 인간애에 기초한 정치이다. 한 조직의 힘은 무기와 자본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뢰와 공감대이다.
신뢰와 공감대는 사랑의 실천 속에서 만들어진다. 따뜻한 사랑의 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가득하면 태평성대하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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