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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의 횡성수설 橫城竪說 (29)

맹자(孟子) 다시 읽기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20일

↑↑ 이 철 영
편집국장
ⓒ 횡성뉴스
천자문을 배우던 기억
나 어릴 때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서당을 하셨다. 몰락한 양반가의 호구지책이었지만 덕분에 나는 5살 때 천자문을 배웠다.

그런데 천자문을 배운 기억은 잘 나지 않고, 동네 형들이 할아버지 목침에 올라가 담뱃대로 종아리를 맞는 장면이나 수업료로 곡식을 조금씩 담아오던 것이 영화의 스틸사진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 할아버지가 붓으로 필사한 책들이 여러 권 보았고, 내가 알 수 없는 한문책들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으니 천자문을 배운 기간도 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형들은 내가 천자문을 떼었다고 했다. 아마 쓸 줄은 모르고 일부 외우기는 했나보다.

나보다 오래 배운 형들은 천자문에 이어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까지 배우기도 했고,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한글은 물론 주역까지 배우셨다. 동네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는 이름을 지어주셨고, 사주를 보거나 혼사가 있는 집에 길일을 잡아주기도 하셨다.

할아버지가 더 오래 사셨으면 나도 천자문 다음 단계까지 올라갔을지 모르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상한 것은, 중학교에 가서 처음 한문을 배울 때 이상하게 한문이 낯설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얼굴에 ‘나 착함’이라고 쓰고 다니시는 한문선생님은 그런 나를 눈여겨보셨는지, 다른 아이들이 한문에 관심이 없어서였는지 수업시간에 나에게만 물어보고 나하고만 눈을 맞췄다. 그게 부담스러워 한자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봐야 연합고사 비중은 미미했는데도 말이다.

실패한 맹자 다시 읽기
20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사서삼경에 관심이 생겨 논어, 맹자, 시경 등을 읽고 나서 노장(老莊)철학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노장철학을 그 어린 나이에? 겉멋이 단단히 들었던 거다.

지난해 임기제공무원을 마치고 1년간 쉬면서 ‘맹자 다시 읽기’에 도전했다. 금세라도 독파할 기세였다. 번역본만 보던 것을 원문으로 읽어보겠다고 친구에게 중국문법책도 얻어보고, 문법해설이 잘돼있는 새로운 번역서도 사서 보았지만 한자(漢字)를 하나하나 해석해가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결국 다시 번역본을 읽어나갔다. 그래도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라 다시 보는 맹자는 새로웠다. 드문드문 낯익은 문장도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이루(離婁) 상(上) 4장에 나오는 이런 글이었다.

애인불친 반기인(愛人不親 反其仁) 치인불치 반기지(治人不治 反其智) 예인부답 반기경(禮人不答 反其敬) 행유부득자 개반구제기(行有不得者 皆反救諸己) 기신 정이천하 귀지(其身 正而天下 歸之)풀이를 정리하면 이렇다.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거든 자신의 어진 마음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로운 마음을 돌아보고, 남을 예로 대하여도 답이 없으면 자신의 공경하는 마음을 돌아보라. 행하였으나 얻지 못하면 모두 자신이 반성하여 찾아야 하니 자기 스스로 올바르면 천하가 돌아온다.”

맹자에서 답을 찾다
맹자의 이 글에 대학자 주희(朱熹)는 이런 주석을 달았다.
“얻지 못한다는 것은 그 하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 친해지지 않고, 다스려지지 않고, 답하지 않는 것이 이것이다.

자신이 반성하여 구한다는 것은 자기의 어짊을 반성하고, 자기의 지혜를 반성하고, 자기의 공경을 반성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그 스스로 다스려짐이 더욱 자세하여 몸이 바르지 아니한 것이 없을 것이다. 천하가 돌아온다는 것은 그 효과를 극진히 말한 것이다.”
-맹자/대학 사서집주 II. 1997. 8. 20 주희 지음/한상갑 역(p.220)

맹자를 해석하는 것이 훨씬 구체적이다. 얻으려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으면 자신의 부족함이 없었는지 돌아보라는 말씀이 귀에 쏙 들어온다.

맹자는 기원전 372년에 태어난 사람이다. 2300여년 전에 태어난 사상가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도 통하는 것, 이런 것이 시대를 초월하는 진정한 고전이다.

230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자신을 반성하는 것은 어렵고 남의 탓을 하기는 쉽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더 심하다. 얻고자 하는 것은 많으면서 자신의 부족함은 돌아볼 줄 모른다. 오로지 선거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국민에게 공감을 얻기는 요원하다.

설사 각고의 노력, 소통과 협력, 창의와 배려, 공정과 지원을 홍보하고 있다 하더라도 국민이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면 이게 국민의 책임일까. 일방적인 홍보를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맹자를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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