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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제도는 조선시대에 처음 생긴 듯하다.
조선 초기에 상소나 고발 제도가 있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사람이 주장관(主掌官. 송사(訟事)·인사(人事)·과거(科擧) 등 형옥(刑獄)과 행정 사무를 보는 관원)이나 관찰사에게 신고하면 사헌부에서 처리하는 절차였다.
여기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는 최후의 항고나 직접 고발할 수 있게 했는데, 그래서 설치한 것이 신문고다.
신문고는 태종 1년(1401)에 설치됐다. 억울함이 있는 사람이 신문고를 치면 북소리를 임금이 직접 듣고 임금의 직속부서인 의금부당직청에서 억울한 사연을 접수해 처리하게 했다.
그러나 신문고를 치는 데도 일정한 제약이 있었다. 마을의 하급관리나 머슴이 상관이나 주인을 고발, 관원이나 백성이 관찰사나 수령을 고발, 타인을 매수하거나 사주해 고발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엄한 벌을 주었다.
신문고는 종묘와 사직에 관계된 일, 목숨에 관계되는 범죄, 누명 같은 억울함을 고발하는 경우에 울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해도 신문고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무질서한 현상이 속출했다. 그러자 신문고의 사용을 더 엄격히 제한했지만 악용되는 사례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하급 관리들이 악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민이 행정기관에 대하여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일을 민원이라 한다.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제에서 매우 좋은 제도이고, 주민을 위한 행정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는 순기능이 있다.
그런데 요즘 민원은 거의 무제한이다. 그러다보니 관공서에는 연일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5월 한달간 횡성군 허가민원과에 접수된 민원이 무려 1009건이다. 이렇게 민원이 많이 생기니 민원인과 공무원과의 다툼도 빈번히 일어나고 민원담당 공무원의 스트레스는 쌓여만 간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부서는 기피부서가 된 지 오래되었고, 상습민원, 악성민원도 많이 생겼다. 몇 해 전 용인시에 살던 친구가 악성민원에 시달렸는데 그 민원인은 자기 입으로 자기가 1년에 400건 민원을 넣었다고 자랑하고 다녔고, 민원 스트레스로 공무원 한 사람이 자살까지 했는데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고 했다.
민원인 전성시대다. 민원인에게는 별다른 제한이 없고, 민원을 넣는 곳도 많다. 허가민원과, 기획감사실 감사계, 군수실, 도 감사계, 국민신문고 등 사실상 모든 공무원이 민원접수 대상이다.
앞으로도 민원은 늘면 늘었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민원을 접수하는 행정기관도 특별한 민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민원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일관성 있는 대응이 필수적이다. 담당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고, 민원인의 신분에 따라 필요한 서류가 달라지고 처리기준이 바뀐다면 누가 공무원을 신뢰하겠는가.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이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제도를 만든 취지가 무색해진다. 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거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래 전,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행정기관은 주민들을 위해 일을 하는 곳이고, 공무원이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인 것은 분명하다. 민원인들로부터 부당한 대우,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서도 안되지만, 민원인 또한 원칙없는 민원처리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민원인을 설득하려면 무엇보다 공무원이 공정해야 하고,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업무의 일관성에 변화가 생겨서는 안된다. 민원의 처리가 공정하고,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대응한다면 악성민원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민원 같지 않은 민원은 과감하게 걸러내는 장치도 필요하다.
여태 살면서 한 번도 민원을 넣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악성 민원을 이해할 수 없다. 살면서 민원 넣을 일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민원총량제라도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한 달에 몇 건, 1년에 몇 건 민원을 넣을 수 있게 기회를 충분히 주고 그 이상 초과하는 민원에 대해서는 건당 수수료를 부과하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