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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의 횡성수설 橫城竪說 (35)

마음을 보여주세요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08일

↑↑ 이 철 영
편집국장
ⓒ 횡성뉴스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아주 어릴 때,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안경이 발명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그건 아주 무서운 생각이었다.

착한 마음만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온갖 나쁜 마음까지 다 보게 된다면 그 무서움과 끔찍함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들은 절대로 이런 안경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쓴다. 안경을 벗으면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눈이 나쁘다. 잘 안보이는 것은 불편할 때도 있지만 잘 볼 수 없어서 좋은 점도 있다.

눈꼴 사나운 것, 치사한 것, 비겁한 것, 더러운 것, 보기 싫은 것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으니까.

마음은 어떻게 드러나나
마음과 관련된 말에는 마음자리, 마음결, 마음씀, 마음씨가 있다. 마음자리는 마음의 바탕, 마음결은 마음의 물결, 즉 마음의 움직임이다.

마음씀은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마음씨는 마음의 모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인간의 바탕에서 물결이 일 듯 움직여 밖으로 드러나고, 그렇게 드러난 모습이 마음씨다.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말과 글, 표정과 행동 등이 쓰인다. 이런 수단 없이 마음을 표현하고 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중에서 특히 마음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말과 글이다.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한다. 마음을 전한다는 생각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런 부담을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마음을 전하기 위한 말하기나 글쓰기는 한결 쉬워질 것이다.

소박한 글이 주는 감동
얼마 전 횡성소망이룸학교에서 한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분들이 쓴 시를 볼 기회가 있었다. 따로 문학을 배운 것도 아니지만 어르신들이 쓴 시는 마음을 전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현란한 수사법이나 기교는 없지만 그분들의 글에는 가식이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이런 글은 그대로 감동이 된다. 그 어떤 아름다운 글보다 이렇게 진심이 드러나는 글이 훨씬 더 강한 감동을 준다.

며칠 전에는 서원면에 귀촌하신 분을 우연히 만났다. 연세도 지긋하신 분인데 이태 전에 자서전을 쓰셨다며 읽어보라고 한 권 주셨다.

이분은 전문적인 글쓰기를 배운 것도 아니어서 부끄러운 글이라고 겸손해했지만 나는 깜짝 놀랐다. 책을 한 권 온전히 쓴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인데 직접 자서전을 썼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담담하게 정리한 글이 술술 읽히는 것도 놀라웠다.

살면서 즐겁고 행복했던 일, 아쉽고 슬펐던 일, 가족 이야기 등을 재주 부리지 않고, 자랑도 하지 않으면서 소박하게 정리한 글이었다. 글에 진심이 담기면 의도하지 않아도 감동을 전할 수 있다.

마음을 보는 마음의 눈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형상이 없으니 만질 수도 없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다.

마음이 통한다는 말은 마음이 마음을 알아본다는 말이고,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말은 마음으로 마음을 쓰다듬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이 통하고, 서로 마음을 어루만져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과 위선도 같이 들어있어 어느 것이 진심이고 위선인지 구분이 어렵다.

마음먹고 속이자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마음은 드러내기보다 감추거나 위장하기가 훨씬 더 쉽다.

위선이 진심인 사람들
거짓이나 위선이 왜 필요할까. 그것이 필요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거짓이나 위선이 필요한 사람들은 남을 위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거짓이나 위선이 진심이다.

그래서 절대로 진심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만일 위선이 들키기라도 하면 다음으로 내미는 카드가 ‘그건 오해’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말이지만, 그럼 사실을 잘 전달하지 못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대개 오해는 하는 사람보다 오해하게 만든 사람 책임이 더 클 때가 많다.

단순한 오해는 해명도 간단하다. 진심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오해라고 우기면서 해명이 길어지면 다른 위선이 더해진 결과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변명이 변명을 낳는다. 거짓을 진실로 덮을 수 없으니 거짓으로 거짓을 덮을 수밖에 없고 변명을 변명할 수밖에 없다.

거짓과 위선의 악순환은 진심이 아니면 끊어낼 수 없다. 권력을 노리거나 따르는 사람들에게 거짓과 위선의 악순환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진심을 숨겨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니 이들에게 거짓과 위선은 어쩌면 미덕일지도 모르겠다.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7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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