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횡성수설 橫城竪說 (38)
시집(詩集) 권하는 사회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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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철 영 편집국장 |
| ⓒ 횡성뉴스 |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월간 <개벽(開闢)> 11월호에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가 발표됐다.
일제의 탄압 아래 수많은 애국 지성들이 절망과 무기력에 빠지면서 술에 빠지게 되고, 그 책임을 ‘술 권하는 사회’에 묻는다는 내용이다.
희망이 없어보이는 사회에서 술은 손쉬운 탈출구처럼 보인다. 특히나 소시민들에게는 더 그럴 법하다.
사람들은 힘들어할 때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한다. 그것이 누구이든, 무엇이든 위로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류근 시인과 진혜원 검사가 공동으로 엮은 서정시선집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책이 나왔다.
표지에는 ‘소월에서 박준까지, 우울한 시인과 유쾌한 검사가 고른 우리나라 극강의 서정시’라고 썼다.
류근 시인은 이 시선집의 기획 의도를 “사람들이 왜 자꾸만 나쁜 쪽으로 기울어질까. 그러다가 문득 이런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고, 시심을 잊어서 그런 거다! 이 시대야말로 시가 필요한 시대”라고 밝혔다.
그리고 “여기에 당신이 모르는 시는 없다. 다만 잊고 사는 시가 있을 뿐. 당신이 지금 외롭고 고단한 것은 시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시를 잊고 살았기 때문”이라며 시가 외롭고 고단한 우리를 위로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시인이 시를 믿지 않으면 시인이 아니고, 그런 마음으로 시를 써야 시인이다. 나는 이 책을 3권 사서 2권을 가까운 이에게 선물했다. 벗들이 잊고 있던 시를 다시 읽으면서 잠시나마 외로움과 고단함을 잊기 바라면서.
출판시장이 극도로 침체된 지 오래지만 시집은 그중에서 특히 더 잘 안 팔리는 상품이다.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은 탓일 수도 있고, 시가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전업 시인들은 대개 가난하다.
그런데 이 시집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며 연일 쇄를 거듭하고 있다. 외롭고 고단한 사람이 많아진 것일까. 그렇다면 이 시집이 잘 팔리고 있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시로 위로받는 사람이 분명 있다는 것이니까.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도종환 시집 <접시꽃 당신>이 당시 50만부를 돌파했다고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고, 서정윤 시집 <홀로서기>가 100만부를 돌파하며 한국 출판시장에서 시집 판매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황동규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은 출간 당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시집에 수록된 ‘즐거운 편지’가 소개된 영화가 히트하면서 갑자기 날개 돋친 듯 팔린 적도 있었다.
그밖에 대개의 시집은 출간한 뒤 오랫동안 창고신세를 지기 일쑤고, 잘 팔릴 거라고 기대하며 기획하는 출판사도 사실 없다.
시가 안 팔린다고 시를 쓰는 사람이 없으면 세상은 얼마나 비참해지겠는가. 이렇게 잘 팔리지도 않는 시집을 꾸준히 발행하는 출판사가 눈물겹게 고맙다.
시는 인기가 없고, 시집은 잘 팔리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나라만큼 시인이 많고 시집이 많이 출간되는 나라는 없다.
좋은 시인, 좋은 시집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시를 잊지 않고 이것저것 탐닉하다보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 한편, 시집 한권 발견하는 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시는 특정 부류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시심이 있고 그 시심을 드러내는 이가 시인이다.
횡성소망이룸학교에서 한글을 막 깨친 어르신들이 쓰는 시는 그 어떤 가식도 없이 오로지 순수한 시심만 드러내면서 읽는 사람을 눈물나게 한다.
시는 조각하듯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올리는 물이다. 그 물이 시원하게 갈증을 풀어줄 때 비로소 시는 우리 곁에 온다.
코로나에 폭염에, 피곤하고 지친 나날이다. 특별히 나를 위해 마음 써주는 사람이 없을 때 내가 먼저 마음 써주듯이 시집 한권 손에 들어보자.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거나 평범한 사람이거나 시 한편 읽을 정도 여유가 있다면 삶은 그다지 팍팍하지 않다.
특별히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시집 한권 권한다. 바쁘다는 핑계 대지 말고, 어떤 시집을 선택할지 모르겠다면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를 추천한다. 소월에서 박준까지 우울한 시인 류근과 유쾌한 검사 진혜원이 나름대로 가려낸 격강의 서정시다.
오래 전에 신동엽 시인은 ‘산문시 1’의 말미에 이렇게 부러운 모습을 그려놨다.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월간문학 1968.11) |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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