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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의 횡성수설 橫城竪說 (44)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9월 16일

↑↑ 이 철 영
편집국장
ⓒ 횡성뉴스
인류는 농사를 지으면서 고단한 유랑을 끝내고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농사로 안정적인 먹거리가 생기면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삶의 기본이 먹는 것이니 농사야말로 천하의 근본이 아닐 수 없고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그러나 요즘은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 아니라 천하의 천덕꾸러기가 됐다.

인간의 욕심으로 생산량만 늘리기에 몰두한 나머지 농약과 화학비료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친환경농업이 등장하긴 했지만 관행농법에 비하면 아직 미미하다.

친환경농업이 환경도 살리고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해 부가가치가 높은 것을 알면서도 관행농법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농약과 화학비료가 남용되면서 생산량은 늘어났지만 농산물값은 품값에도 못미치게 떨어지는가 하면 환경은 환경대로 파괴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농사짓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

횡성에 와서 얼치기 농사꾼 13년차다.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다가 직접 해보니 농부들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농사는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게 힘들여 생산한 농산물이 제값을 받으면 좋으련만 농산물 시세는 매번 농부들의 땀을 배신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농사에 피해를 주는 일도 빈번하고,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농가 소득은 좀처럼 올라갈 줄 모른다.

몇 해 전 서리태를 수확해서 서울 사는 지인에게 조금 팔았다. 그해 서리태값은 곤두박칠쳤지만 도저히 그 값에 팔 수가 없었다. 이득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서리태에게 미안해서였다.

나름대로 친환경농사를 한답시고 화학비료는 한 포도 안 쓰고 살충제, 제초제도 안쳤다. 서리태는 그런 환경에서 온갖 풀과 벌레와 싸워야 했다. 그러고 보면 서리태는 내가 기른 게 아니라 햇볕과 바람과 비, 그리고 풀과 지렁이, 개구리가 기른 것이다.

서리태 값은 자연이 준 선물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그런 마음을 편지에 담아 콩과 함께 보냈다.

서리태를 산 지인은 자기 딸이 밥에 들어간 콩을 안먹는데 우리 서리태는 달다고 잘 먹는다며 고마워했다. 그 인사도 내가 받을 게 아니라서 기특하게 자라준 콩과 길러준 자연에게 돌렸다.

지난해에 큰맘 먹고 중고 고추건조기를 한 대 샀다. 해마다 100주 남짓 고추를 심었는데 고추건조기를 들여놓은 김에 400주를 심었다. 그런데 날씨가 심술을 부렸다.

비가 쓸데없이 많이 왔고 탄저병이 일찍 왔다. 결국 고추 400주에서 나온 고춧가루가 22근밖에 안됐다. 고추건조기값과 농사용 전기설비비도 못건졌으니 쫄딱 망한 셈이다. 김장하고 집에서 1년 먹을 양은 충분한 것으로 위로 삼았다.

올해는 고추를 600주나 심었다. 다행히 날씨가 괜찮아서 아직까지 병도 없고 첫물에 이어 3번을 더 땄다. 앞으로 더 딸 것이 남았으니 올해는 100근은 너끈할 듯싶다. 그런데 고추값이 뚝 떨어졌다. 나만 농사가 잘 된 게 아니라 남들도 다 잘돼 생산량이 많아진 탓이다.

지난해 근당 2만원 안팎이던 고춧가루값이 올해는 15,000원 안팎이다. 100근을 다 판다고 치면 150만원인데 고추건조기값과 농사용 전기설비비는 빠진 셈이다. 그런데 계산할 게 또 있다.

모종값이 주당 300원, 퇴비값, 살충제, 영양제, 경운비 등에 족히 50만원쯤 들어갔다. 또, 두 명이 한번 따서 씻고 건조기에 넣고 하는데 하루종일 걸리는데 인건비로 치면 100만원쯤은 될 테니 이것저것 다 합치면 힘들게 농사짓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훨씬 싸다.

게다가 쪼그리고 앉아 고추 따는 일은 남자의 신체구조상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고추 한번 따고 나면 2∼3일은 고관절이 뻐근하다.

농사가 이렇다. 소비자는 비싸다고 하지만 농부들이 힘들게 지은 농산물값은 늘 밑지는 수준이다. 이러니 농사일에 힘이 나겠는가. 전업농이 아닌데 이정도인데 전업농의 고단함은 오죽할까.

농부들은 농사가 잘못돼도 걱정, 잘돼도 걱정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농부의 고단함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은 이제 쓸 수 없게 됐다. 농사도 경제 범위로 들어가면서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됐다. 대규모 농사가 아니면 부농은 그저 꿈일 뿐이다.

농부가 없으면 인간의 기본적인 삶이 불가능한데도 정부의 농업정책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경제는 도시에 집중돼 있고 농촌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면서 농부들은 자연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됐다.

쌀 미(米) 자를 쌀이 되기까지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렇게 귀하게 자란 쌀을 우리는 하찮게 여기고 있다. 벼 수매시기만 되면 농부들은 수매가가 얼마로 책정될지 기대와 근심으로 지켜본다. 수십년 동안 오른 물가에 비해 쌀값은 형편없다.

농사가 없으면 삶도 없다. 농민을 위한 농업정책이 훨씬 더 두터워져야 한다.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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