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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157) 『 내 인생의 공부법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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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 ⓒ 횡성뉴스 | 나의 인생의 공부란 체득(體得)이다. 이는 몸으로 깨닫고 동시에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다. 학문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 일당백(一當百)의 공부이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 깨우쳐 주어도 잘 안 된다. 불교에서 원앙새를 수놓은 솜씨는 남에게 보여줄지라도, 바늘을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한다.
수를 놓은 솜씨는 얼마든지 보여주되 수놓는 방법은 말해주지 말아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궁리하여 스스로 알게 된다는 말이다.
수놓는 방법까지 가르쳐 준다면 배우는 자가 깊이 터득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뜻이다. 또한 공부한 끊임없이 하면서 나의 인격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밝히며 인간과 우주의 도(道)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몸으로 체험(體)한 깨달음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仁)을 실천하며 얻어지는 지혜(智) 즉 체인지(體仁智)가 나를 바꾸고 세상을 체인지(change)할 수 있다.
공부는 닭이 알을 품는 것과 같다고 주자(朱子)는 말했다. 공부는 쉬엄쉬엄 해서는 안 되며 만일 중단하면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다. 닭이 알을 품고 있지만 뭐 그리 따뜻하겠는가. 그러나 늘 품고 있기 때문에 알이 부화되는 것이다.
만일 끓는 물로 알을 뜨겁게 하면 알은 죽고 말 것이며, 품는 것을 잠시라도 멈춘다면 알은 식고 말 것이다. 학문하는 것은 거울을 닦는 것과 같다. 거울은 본래 밝은 것이지만 먼지와 때가 겹겹이 끼니 수시로 닦아야 한다.
처음에는 아주 힘들고 어렵지만 두 번 세 번 닦는다면 힘이 적게 들고 거울의 밝음도 점점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방치하면 다시 거울은 더럽혀지게 된다. 학문도 조금 쉬운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중단없이 더욱 노력해야 완전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공자(孔子)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남이 나의 학문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또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하였다. 배운다는 것은 때때로 익혀 참되게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성인의 학문은 마음에서 찾지 않으면 어두워져서 얻지 못하므로 반드시 생각하여 그 미묘한 것을 통달해야 한다. 따라서 배워서 익히지 않으면 위태롭고 불안하게 되어 이를 실천해야 한다.
거경궁리(居敬窮理),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경(敬)으로써 덕성을 함양하는 것과 사물의 이치를 깊게 연구하는 공부를 병행하는 방법을 취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덕(德)을 날마다 새롭게 하려면 모름지기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하고, 스승에게 묻기를 좋아해야 한다.
묻기를 좋아하면 덕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근본이 된다. 매일 새롭게 되는 공부는 오늘 질문하기를 좋아하고 내일도 질문하고 익히고 깨닫는 데 평생토록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자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데 있다. 묻기를 좋아하는 호문정신(好問精神)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나 남들에게 묻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여 난세의 걸출한 영웅이 되었고 다산 정약용은 묻기를 좋아해서 실학의 꽃을 피웠다.
경(敬)의 공부 방법은 내가 놓아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이다. 경(敬)은 학문의 시작이요 끝이다. 처음 학문을 시작하는 사람과 성현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敬)으로 학문의 방편을 삼았다.
학문을 하면서 경의 공부가 부족하면 그 학문은 거짓이 된다. 학문하는 사람들이 본심을 잘 거두어들여 오래도록 잃지 않는다면 온갖 사악함이 저절로 사라지고 모든 이치가 스스로 통하게 된다.
시시비비(是是非非) 옳고 그름을 무엇으로 보는가. 마음으로 보는가? 눈으로 보는가? 마음과 눈은 분별심, 죄악으로 오염되고 훼손되었다. 태어날 때의 청정한 본성을 되찾아서 그 본성(本性)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선조들의 배움은 ‘아름답고 위대한 본성의 체현(體現)’이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 헛된 명분이나 공허한 관념을 버리고 사실과 실증을 중시하는 학문이다. 추사 김정희는 글을 쓰거나 난(蘭)을 치는 일에서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하늘이 총명함을 주는 것은 귀천(貴賤) 상하(上下) 남북(南北)을 가리지 않으나 타고난 재능을 정진하면 9999분(分)은 도달한다.
그러나 그 나머지 1분(分)의 공부는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사람의 힘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마땅히 도전하고 노력하면 이치를 알고 도(道)에 이르게 된다. 내 인생의 참된 공부는 결과를 위한 과정의 충실함에 있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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