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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평 時評> 마을을 기록하면 역사가 된다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0월 14일

전국 지자체가 도시재생사업에 뛰어들었다. 대도시는 물론 농촌 지역까지 도시재생이 활기를 띤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 일부분이 쇠락하고 있다는 증거다. 농촌 지역은 도시에 비해 쇠락의 규모가 훨씬 크고 심각하다.

도시재생이란 말은 농촌 지역으로 오면 ‘마을재생’으로 변하게 된다. 횡성군도 최근 도시재생지원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 가능하다.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과도 연계할 수 있고, 지역개발사업과 연계도 가능하다. 또, 지방자치의 핵심인 주민자치 활성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도 하다.

도시재생사업은 정부 기관과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활동 주체는 지역주민이다. 그래서 도시재생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도시재생 활동가를 확보하는 일이다.

그런데 농촌 지역의 경우 인구도 적은 데다가 고령화까지 심해 활동가를 모집하는 일도 쉽지 않고, 활동가를 양성하는 어렵다. 도시재생지원사업에 있어 지자체가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집중 지원해야 할 할 부분이다.

도시재생지원사업이 활발해지면서 마을기록이 주목을 받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에서 왜 마을기록이 주목받을까.

마을기록은 마을의 가치를 찾는 데서 시작된다. 마을의 가치를 기록함으로써 그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된다. 마을기록이 모이면 마을의 역사가 되고, 마을 역사가 모이면 지역의 역사가 된다. 역사는 기록으로 이어지고, 기록이 계속되는 한 역사는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도시재생에 있어 마을기록이 중요한 이유다.

횡성군의 대표적인 기록물은 횡성군지다. 횡성군 역사를 비롯해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지만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증보판이 2001년에 나왔으니 벌써 20년 전 일이 됐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요즘은 1년에도 몰라보게 변하고 있다. 횡성의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서라도 개정판 발행이 시급하다.

일부 면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면지를 발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과거 군지에서 해당지역 자료를 떼어내 면지를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면지든 군지든 정기적으로 개정판을 발행하며 횡성군의 역사를 끊임없이 기록해가야 한다. 그것이 면지와 군지의 가치다.

2015년부터 5년 동안 횡성군청에서 군정 소식지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간의 보람이라면 분기별로 나오던 군정소식지 <자치마당>을 월간 <섬강의 물소리>로 바꾸면서 횡성의 역사 일부를 정리한 일이다.

태기분교 역사는 오래전에 일부 신문과 잡지에 난 기사에 의존해왔으나 전문 작가에 의뢰해 태기분교 역사를 집중 취재, 정리했다. 이를 횡성군 월간소식지 <섬강의 물소리>에 연재해 호평을 받았다. 횡성군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또, 횡성의 대표관광지 중 하나인 풍수원성당의 역사를 정리해 책으로 발간하고, 요약내용을 <섬강의 물소리>에 연재했다. 태기왕 전설을 스토리텔링으로 완성해 <태기유사>라는 책으로 나오기까지 미력을 보탠 일도 보람이다. <풍수원성당>과 <태기유사>에 이어 ‘태기분교’이야기도 책자로 발행되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섬강을 바라보기 좋은 승지봉 중턱에 운암정이 자리잡고 있다. 운암정에 대한 얘기는 횡성군지에도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지만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자료와 서로 다른 점도 있어 이를 바로잡고 싶었다. 그런데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운암정을 둘러보다가 정자 안에 걸린 ‘운암정서’라는 현판을 보았다. 대개 정자 현판은 정자의 이력을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운암정서 내용이 모두 한자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띄엄띄엄 읽다보니 일제강점기에 유태왕 횡성군수가 지은 글이다. 이것을 번역해놓은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대전에 있는 한학자 한 분을 소개받아 번역을 의뢰했다. 횡성군지에 나온 운암정 관련 내용에 오류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번역한 내용을 <섬강의 물소리> 창간호에 싣고 혼자 뿌듯해했다.

내가 사는 곳은 횡성읍 생운리다. 생운리 마을 이름 역사를 찾아보니 사룬마을, 살운마을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때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생운리(生雲里)가 되었다. 사룬과 살운은 비슷한 발음이라 하나로 추측할 수 있지만 그 뜻은 알 수가 없었다.

원주의 어떤 교수님으로부터 생운리 옛이름은 사탄(沙灘)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모래가 많은 여울’이라는 뜻으로, 생운천에 모래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고 했다. 지금은 양이 많이 줄었지만 한때는 여기서 흘러간 모래가 전천과 섬강이 만나는 지점에 모래사장을 이루었다.

횡성역 앞을 지나는 전천(前川)은 ‘앞냇개울’로 불렸고 섬강은 ‘뒷냇개울’로 불렸다. 지금도 횡성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앞냇개울이라는 달콤하기까지 한 이름이 재미없게 ‘전천’으로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 후유증이다.

횡성으로 들어서는 첫머리이기도 한 ‘구리고개’는 밤나무[栗]의 일본말 ‘구리’와 우리말 ‘고개’가 더해져 생긴 이름이다. 예전에 이 부근에 밤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인데 일본식 지명은 잘 안 바뀌고 우리말 지명은 한자식으로 바뀌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지명의 뿌리를 찾아보면 역사가 보이기도 한다. 횡성군지에 유독 지명유래가 많긴 하지만 자세한 유래를 밝히지 못한 게 부지기수다. 언젠가 나올 수도 있는 개정판을 위해서라도 지명의 어원을 더 연구해보아야 한다.

횡성군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도 마을기록가를 양성하고 있다. 마을기록가들이 마을 곳곳을 살펴 가치를 찾아내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도시재생사업은 빠르게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여부가 이들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마을기록가가 얼마나 더 양성될지는 모르겠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들의 활약에 따라 마을의 가치, 횡성의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될 테니까.

마을기록가를 비롯해 지역활동가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는 지자체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군의 의지에 따라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 매번 기대만 하다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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