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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의 횡성수설 橫城竪說 (48)

마음에 다리 하나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0월 21일

↑↑ 이 철 영
편집국장
ⓒ 횡성뉴스
부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동네 어른들로부터 “너는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울며 떼를 쓰는 것을 보고 놀릴 때 쓰던 말이다.

어떤 아이는 그 말을 믿고 엄마를 찾아가겠다고 집을 나가기도 했다. 그래봐야 하루도 못넘기는 가출이었지만 어른들은 재미있어했다.

1934년 개통된 영도다리는 부산의 상징이었다. 영도다리는 큰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올렸다. 원래 이름은 부산대교였지만 1980년 부산대교가 개통되면서 영도대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름이 바뀌기 전에도 영도다리라고 불렀다. 6.25전쟁으로 피난민이 모여 살던 부산은 영도다리를 중심으로 삶의 애환이 쌓이는 곳이었다. 당시 유행가 ‘굳세어라 금순아’는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고 노래하며 피난민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주었다.

퐁네프 다리는 프랑스 세느강 위에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로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영화로 더 유명해졌다. 나폴레옹이 만들었다는 퐁데자르 다리는 파리의 예술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던 다리로, 까뮈, 사르트르, 랭보 등이 즐겨 찾으며 숱한 명작의 탄생배경이 되기도 했다.

미라보 다리는 아폴리네르 시,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우리의 사랑도 흐르네”로 유명하다.

프랑스 세느강의 다리가 로맨틱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면, 서울 한강 위를 지나는 다리는 심심한 편이다. 지역명을 빌려 지은 평범한 이름부터 그렇고, 최신 건축공법이 동원됐지만 다리 기능에만 충실할 뿐 미적 감각은 무시됐다.

기껏해야 현란한 조명으로 야경을 만들어내는 정도다.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다리도 있다. 6.25때 이승만은 서울을 버리고 도망치면서 한강철교를 폭파해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게 했다. 한강 다리 최악의 역사다.

서울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에 놓인 다리 중에는 명품 다리가 많았다. 1959년 청개천이 복개되면서 다리는 다 사라졌다. 그중 수표교(水標橋)는 다리의 역사적 가치와 조형미가 뛰어나 장충단공원으로 옮겨놓았다. 서울지방문화재 18호로 지정된 수표교는 세종2년(1420년)에 놓은 다리다.

인근에 우마시전(牛馬市廛)이 있어 마전교(馬廛橋)라 불리다가 이듬해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한 수표(水標)가 설치되면서 수표교라 불렸다. 화강암을 정교하게 깎아 엮고, 돌난간도 아름답게 장식한 다리다.

사람들이 건너다니는 다리의 기본 기능 외에 청계천의 수위를 보면서 홍수에 대비하는 실용적인 기능이 더해지고, 예술적인 조형미까지 살리는 여유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런 여유가 조선시대보다 훨씬 풍요로운 요즘은 왜 보이지 않을까.

우리나라 다리 이름은 대체로 싱겁다. 거의 지명에 의존하고, 큰 대(大)자를 남발해 덩치가 크면 다 대교라는 돌림자를 붙인다.

경남 하동과 남해를 연결하는 노량대교가 2018년에 완공됐는데 완공되기 전까지 다리 이름을 두고 두 지자체가 실랑이를 벌였다. 하동군에서는 ‘하동대교’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남해군은 ‘제2남해대교’를 고집했다.

당시 남해군수는 이를 관철하기 위해 1인시위도 벌였지만 결국 경남도지명위원회의 중재로 두 지역이 조금씩 양보해 ‘노량대교’로 합의한 모양이다. 두 공간을 연결하는 것이 다리인데 지역명을 고집하다보면 이런 다툼이 발생하기 쉽다. 좋은 선례를 남겼다.

포항시는 2013년 형산강이 동해에 이르는 합수지점에 인도1교, 2교, 동빈내항인도교 등 3개의 인도교를 건설했다. 이렇게 재미없는 다리 이름을 2018년 정식명칭으로 ‘탈랑교’ ‘말랑교’ ‘우짤랑교’로 바꿨다. 지역 사투리를 이용해 지은 다리 이름은 차차 전국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명소가 되었다.

김해시는 올해 9월 대정천 계동교와 삼문교 사이 이름 없는 3개의 작은 보도교에 주민의 의견을 들어 ‘큰꽃’ ‘도담’ ‘마루한’이라는 예쁜 우리말 이름을 지어주었다. 시에서는 다리의 아름다운 이름과 의미를 알리기 위해 표지판도 설치했다. 이곳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다리를 보는 시선이 더 따듯해질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횡성군 안흥면 삼형제바위 앞에는 주천강을 건너가는 ‘삼형교’가 있다. 삼형제바위 앞에 있다고 지은 이름이겠으나 성의 없어 보이기론 최악이다.

‘삼형제교’도 아니고 삼형교라니. 참으로 해괴한 이름이다. 삼형제바위는 도깨비삼형제를 말하고, 이 다리를 건너면 ‘도깨비도로’도 나오니 말도 안되는 삼형교보다 차라리 ‘도깨비다리’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다리는 물을 건너기 위해 놓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물을 건너는 기능뿐 아니라 공간을 연결해주는 역할까지 한다. 또 공간을 연결하면 고립과 단절이 소통으로 변한다. 이제는 다리에 이름을 붙일 때 다리를 놓는 마음도 함께 담았으면 좋겠다.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도 하나 놓고.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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