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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의 횡성수설 橫城竪說 (57)

한 해를 보내는 마음, 반성(反省)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2월 30일

↑↑ 이 철 영
편집국장
ⓒ 횡성뉴스
신축년 한해를 이렇게 보낸다. 이맘때가 되면 누구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맘때 하는 생각에는 반성이 많다. 반성이란 자신의 언행에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다. 왜 없겠는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언행이 반듯하기가 쉽지 않다.

공자(孔子)는 <논어>에서 40세는 불혹(不惑)으로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 했고, 50세는 지천명(知天命)으로 하늘의 뜻을 깨닫는 나이라 했다.

또 60세는 이순(耳順)으로 귀가 순해져 말을 듣기만 해도 그 이치를 이해하는 나이라 했다.

나 이제 불혹과 지천명을 지나 내년이면 이순에 든다. 불혹에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은 날이 있었던가. 지천명에 하늘의 뜻을 깨달은 적이 있었는가. 돌이켜 생각해보지만 기억에 없다. 해마다 반성하는 일만 반복하고 있다. 이순에는 귀가 순해질까. 이 또한 모르는 일이다.

반성하는 시인 김영승
김영승 시인은 1987년에 첫 시집 <반성>을 세상에 내놨다. 시집에는 ‘반성’ 연작시로 가득했다. 거침없는 표현, 세상을 한탄하면서도 시인으로서 자기 반역을 시도하며 문제작으로 떠올랐지만 당시 문화공보부는 외설을 경고했다.

문제를 일으켜서 문제작이 되기도 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재미있는 시 한 편 보자.

반성 16
술에 취하여/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놓았다./술이 깨니까/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김영승 시인은 술을 자주 마셨다. 이 시도 술 마시는 일상에서 나온 시다. 술에 관한 그와의 에피소드 두 개.

김영승 시인이 내가 일하고 있는 출판사에 왔다. 그는 내 옆으로 오더니 “이형, 술 한잔하고 합시다.” 그러면서 가방에서 주섬주섬 국산 양주 캡틴큐 한 병을 꺼냈다. 나는 일하는 중이라 안마신다고 하니 그는 “그럼 나 혼자 마시지 뭐.” 하면서 병뚜껑에 한잔 따라 마시고는 뚜껑을 닫았다.

또 한번은 그의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연습장에 손으로 그린 달력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가득했다. 이게 무슨 표시냐고 했더니 ‘술 마신 날’을 표시한 거라고 했다. 거의 매일 마시면서 술 마시는 날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보였다. 그리고 또 술을 마셨다. 아마 저 ‘반성 16’도 그런 날 중 하루였으리라.

평생 마실 술은 정해져 있다
20대에 배운 술을 여태 마시고 있다. 많이 마셨고 자주 마셨다. 김영승 시인처럼 술 마신 날을 기록해본 적이 있다. 1년에 200일쯤 마셨다. 반성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술이 늘 내게로 왔다. 정말이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연모하는 여인을 찾아갔다.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져 하고 싶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들고 다니던 시작노트에 글씨를 써서 보여주었다.

그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면 또 무언가를 써서 보여주었다. 이튿날 술이 깨고 나서 보니 내가 쓴 글을 내가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여인은 어떻게 알고 고개를 끄덕여주었을까.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그랬다지. “나 죽거든 술통 밑에 묻어주오. 혹시 술이 샐지도 모르잖아?”

현명한 술꾼이 말했다. “평생 마실 술은 정해져 있다. 한꺼번에 다 마시면 죽기 전까지 못마신다. 좋아하면 아껴 마셔라. 그래야 죽을 때까지 마실 수 있다.” 공감한다. 반성의 결과다.

연말연시 연이은 술자리를 코로나19가 말리고 있다. 억지로 뿌리칠 수도 없으니 이참에 더 아껴먹을 수밖에.

부끄러운 위로
띄엄띄엄하던 페이스북 활동을 올해 1년 쉬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화가 많이 났고, 그 화를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성향이 같은 사람들로부터 위로도 받았으나 화는 줄어들지 않았고 내상을 입을 것 같았다. 화를 누르고 조용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비겁하게 외면했다.

1년쯤 외면하면 화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불의한 자들은 오히려 기세가 더 등등했다. 잘못이 드러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사람이 어찌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다. 하긴 사람이라야 반성도 하지. 양심을 버린 자에게 반성을 기대하는 게 어불성설이겠다.

어제 일을 오늘 반성하면 가장 이른 반성이고 죽기 직전에 하는 반성은 가장 늦은 반성이다. 연말을 맞아 더 늦기 전에 1년치 반성을 한다.

반성하지 않고도 잘사는 사람이 많지만 그나마 반성이라도 하고 살면 조금 더 잘사는 거 아니겠는가. 부끄러운 위로다.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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