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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186) 줄탁동시(啐啄同時)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2년 0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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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 ⓒ 횡성뉴스 |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는 중국 송나라 벽암록에 나오는 고사로 알속에서 병아리가 나오기 위해서는 어미닭과 병아리가 껍질을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야 한 생명이 온전히 탄생한다는 뜻이다.
병아리는 3주가 되면 알에서 빠져나와야 하는데 단단한 알을 깨기에는 힘이 부친다. 그래도 병아리는 나름대로 공략부위를 정해 쪼기 시작한다.
이때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소리를 기다려온 어미닭이 동일한 부위를 밖에서 쪼아준다. 답답한 알 속에서 사투를 벌이던 병아리는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약 3시간 정도 알 속을 벗어나지 못하면 병아리는 질식하여 죽는다.
이처럼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 한자어로 ‘줄(啐)이라 하고, 밖에서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그리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 줄탁동시이다.
여기서 알 껍데기를 쪼아 깨려는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학생이요, 어미닭은 학생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알을 쪼기는 하지만 어미닭이 병아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미닭은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데 작은 도움만 줄 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이다.
이때 어미는 머리 부분을 바로 쪼아주어야지 다리부분이나 엉뚱한 곳을 쪼아주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미닭이 너무 많이 도와주면 오히려 병아리가 알에서 나와 오래 살 수 없다고 한다.
한 생명의 시작은 동시이고 그리고 함께하는 것이다. 어미닭이 알을 품을 시기가 되면 알을 모아서 품기 가장 안전하고 좋은 곳을 마련하고, 지푸라기나 그에 상응하는 것들을 끌어다가 놓는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앞가슴의 가장 부드러운 털을 뽑아 바닥에 깔아놓고 알을 품는다. 일단 알을 품기 시작하면 매일 낳던 알 낳기도 멈추고 21일을 품는다.
사람이 알을 살펴본다고 손을 밀어 넣어봐도 미동도 하지 않고, 다른 덩치 큰 암탉이 알을 낳으려고 비집고 들어와도 큰 부리로 비키라고 쪼아도 꿈쩍도 하지 않아서 마침내 큰 암탉들도 물러서고야 만다.
하루 한번 정도 물 먹을 때 외에는 일어나는 법도 없다. 아무리 맛난 먹을 것을 줘도 일어서서 나오는 법도 없고, 골고루 따뜻하게 알을 감싸기 위해 부리로 알을 이리저리 굴려 주기도 하며, 품은 알을 위해 ‘이미 나는 죽은 상태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로지 알만 품는다.
우리 아이들이 원대한 꿈을 향해 자기를 극복하고 힘차게 깨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결국 세상을 혼자 스스로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풍랑과도 같다.
참으로 구할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라! 공부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듯 하고, 굶주린 사람이 밥을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을 생각하듯 하고,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것은 어미닭의 간절함에서 한 생명이 탄생하는 것과 같다. 줄탁동시의 묘는 기다림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도 적절한 때가 있어 어미닭과 병아리가 동시에 쪼아야 비로소 목적을 달성하듯 ‘타이밍’도 적절한 기다림에서 나온다.
줄탁동시의 또 하나의 묘는 어미닭이 병아리가 쪼는 부위를 잘 듣는 것이다. 잘 듣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장자는 소통을 ‘날개 없이 나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 놓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안에서 내는 소리와 밖에서 듣는 소리가 조화로운, 줄과 탁이 조화를 이루는 비결은 잘 듣는 것에서 나온다.
경청(鏡淸) 스님은 항상 줄탁지기(啐啄之機)로 후학들을 깨우쳐 주었다. 그는 일찍이 대중들에게 말했다.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요, 어미 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 주는 스승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안과 밖에서 쪼는 행위는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스승이 제자를 깨우쳐 주는 것도 이와 같아, 제자는 안에서 수양을 통해 쪼아 나오고, 스승은 제자를 잘 보살피고 관찰하다가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깨우침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데, 이 시점이 일치해야 비로소 진정한 깨달음이 일어난다. 줄탁동시가 시사하는 것은 크고 위대하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2년 0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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