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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190) 조선 임금님들의 이야기(Ⅰ)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6월 29일

↑↑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횡성뉴스
518년 조선의 숨결 속에는 임금님(27명)들의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우리 조상들의 모습, 역사의 변화, 감동, 사랑, 배신 등 다양한 인생의 교훈이 있다.

조선의 왕들은 한결같이 충효예, 청백리 사상, 예악정명(禮樂正名), 민본사상, 의리사상(義理思想) 등으로 백성들을 위한 국가의 정신 지주로 삼았다.

청렴결백의 청백리 사상 “나라를 첫째로, 남을 둘째로, 나를 끝으로 하라!” 그리고 애국(愛國) 호국(護國) 흥국(興國)이 조선왕조 500년의 버팀목이었다. 역사는 우리 삶의 거울이다.

조선왕조의 제1대 태조 이성계는 개국군주로서 57세 조선 최고령의 나이로 즉위한 임금이다. 이성계는 1335년생이고 조선 건국은 1392년이다. 왕비 2명, 후궁 4명, 자녀 8남 5녀이다.

이성계는 황산에서 왜구를 정벌한 황산대첩을 이끌었고, 도읍지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 이후 성리학자 정도전의 도움을 받아 조선을 설계하였다. 막내아들 이방석(11세)을 왕세자로 세우자 이방원(제3대 태종)은 정도전, 이복형제 이방번, 세자 이방석까지 죽이는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이방원은 둘째 이방과(제2대 정종)을 제압하고 이방간(넷째)마저 제압한 후 왕세자에 등극했다. 이방원은 운곡 원천석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조선 유일의 과거시험이 합격한 임금이며, 자발적으로 왕위에서 내려온 최초의 임금이다. 태조의 맏아들 이방우는 건국 2년에 일찍이 병으로 사망했다.

사실상 조선건국 후 맏아들 역할을 한 사람이 이방과(제2대 정종)이었다. 정종은 조선 최고의 격구인 폴로(말을 타고 공채로 공을 치는 경기) 선수가 되었으며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정종은 현재 왕 이외에 전 왕이 살아있는 경우 호칭인 상왕(上王)이 되어 20년간 유유자적한 삶을 보냈다. 천하의 태종도 풀지 못한 숙제가 골칫덩이 맏아들 양녕대군이다.

태종의 적장자인 양녕대군이 세자가 되지만 아버지 태종이 지난 날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된 것을 부끄러워했고 여자관계로 빗나가기 시작하여 결국 태종은 양녕을 폐위하고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한지 2개월 만에 왕(제4대 세종)이 된다.

충녕대군인 세종은 백성의, 백성에 의한, 백성을 위한 임금이 되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애민(愛民)군주였다.

세종의 재위기간은 역대 영조가 약 52년으로 가장 길고 숙종, 고종, 선조, 중종, 순조 순서를 이어 약 32년간 7번째로 길다. 왜구를 격퇴한 대마도 정벌은 세종 1년이라 태종의 업적이었다. 태종이 세종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었지만 군사권은 주지 않았었다.

조선 최초의 세금에 관한 여론조사를 시행한 소통의 왕, 노비에게 100일간의 출산 휴가도 주었다. 세종은 일 중독자로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글을 창조했다.

세종이 거울을 보며 직접 자기 혀 모양, 입 모양을 참조하여 만들었다. 세종은 ‘해동의 요순’이었다. 중국 고대의 대단한 성군인 요임금과 순임금의 이름을 따서 요순이라는 영광스러운 왕이 되었다.

세종은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태종이 “내가 죽어도 세종은 고기반찬을 꼭 먹도록 해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세종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다. 동성애를 한 며느리도 있었다. 세종은 왕비1명, 후궁 5명 사이에 18명의 아들과 딸을 두었다.

첫째 아들인 제5대 문종은 아내 복이 없었다. 첫째 부인은 쫓겨나고 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씨가 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순빈 봉씨는 소쌍이라는 궁녀와 대식(동성애)을 하였다.

제5대 문종은 세자 생활만 30년으로 준비된 임금으로 아버지 세종을 쏙 닮은 임금이었다. 문종은 조선의 군사에 관심이 많아서 이름이 문종(文宗)이지만 사실상 무종(武宗)에 가까웠다. 신기전은 조선시대에 사용한 로켓추진 화살 병기로 세종 30년 문종이 대리청정한 시기에 제작되었고 군사에 힘쓴 명군(名君)이 바로 문종이다.

한편 조선 최고의 미남이었다. 멋진 수염과 풍채가 좋고 외모가 출중하여 명나라까지 소문이 났다. 문종은 세자시절부터 종기가 나서 고생하였다. 결국 문종은 병상에서 오매불망 세자(훗날 단종) 걱정뿐이었다.

승하 전에 신하를 불러 왕의 유언을 받는 신하들을 ‘고명대신’이라고 불렀는데, 고명대신이 영의정 황보인, 우의정 김종서였다.

문종은 “나는 더 이상 가망이 없소. 내 아들 단종이 겨우 12세이니 왕 노릇을 잘 할지 걱정이 많소. 홀로 남겨진 단종을 그대들이 잘 지켜주시오.” 성군 아버지 세종만큼 명군이 문종이었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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