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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191) 조선 임금님들의 이야기(Ⅱ)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2년 07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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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 ⓒ 횡성뉴스 | 단종은 조선 건국이래 처음으로 태어날 때부터 왕으로 지목되었다. 아버지 문종은 조선 최고의 미남이었고 세번째 부인이 낳은 아들이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었다.
할아버지(세종) 할머니(소현왕후) 아버지(문종) 어머니(현덕왕후)가 모두 승하한 후 혈혈단신 소년 군주가 되었다. 숙부인 수양대군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물로 할아버지 태종 이방원을 닮았다.
우의정 김종서는 단종의 보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양대군(세조)의 야심을 꺾을 수 없었다. 수양대군은 불시에 우의정 김종서를 죽이고 역모를 꾀했다는 명분으로 김종서 세력을 숙청하고 수양대군이 절대 권력을 갖는 계유정난이 일어났다.
단종은 세종이 계시던 자미당을 바라보며 한탄의 눈물을 흘릴 때 수양대군도 함께 울었다고 실록은 전하지만 조선판 악어의 눈물일 것이다. 단종은 15세에 상왕이 되고 왕위를 수양대군에 양위한다.
1455년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의 양위로 왕이 된다. 단종 복위운동도 일어나고 결국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된다. 세조가 단종을 죽이려고 사약을 내리자 그것을 운반하는 사절이 자결을 하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세조는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꿈에 뱉은 침자리마다 종기가 났다.
세조의 모사꾼 한명회는 수양대군과 개인적으로 사돈관계를 맺었고 계유정난 당시 살생부를 만들어 세조의 편이 아닌 조정대신들을 처단하였다. 죽을 때까지 줄타기를 잘해서 잘 먹고 잘 살았단 신하가 칠삭둥이 한명회였다.
세조는 아내였던 정희왕후를 매우 사랑하였고 후궁이 딱 한 명이었다. 세조는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한명회와 신숙주와 함께 술을 마셨다. 세조와 신숙주가 팔씨름을 하여 신숙주가 세조의 팔을 한방에 확 꺾어버렸다. 분위기가 싸늘해졌지만 술자리는 마무리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한명회는 자기 종을 불러 “지금 신숙주 영감에게 가서 동향을 살펴라.” 신숙주의 집에 가보니 불을 켠채 책을 읽고 있었다. 세조는 사람을 시켜 신숙주의 집에 다녀오게 한다. 한명회에게 귀띰을 받은 신숙주는 불을 끄고 자고 있었다. 세조는 그제야 안심한다.
“아, 신숙주가 취해서 그랬구나.” 소문쇄록에 의하면 세조는 애주가였고 한명회는 지략가이며 신숙주는 책벌레였다. 세조의 위대한 업적으로 체계적인 법전인 경국대전 편찬을 착수한 것이다.
제7대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로 세자였던 11세 나이로 한명회의 딸인 장순왕후 한씨(16세)를 아내로 맞이했다. 혼인한 다음 해 아들 인성대군을 낳았다. 19세에 왕이 되고 12세의 소년 아버지가 되었다. 이로써 조선의 왕 중 최연소 아버지가 탄생하였다.
남이(南怡)의 옥(獄)이 있다. 남이는 16세에 과거에 합격하고 26세에 1등 공신에 책봉되었으며 병조판서가 되는 등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남이는 세조가 집권한 시기에 무인으로 활약했지만 예종이 즉위하자 실각되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긴 꼬리의 혜성이 나타나자 남이는 입을 열었다. “묶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이 오려는 징조네.” 유자광이 남이의 역모를 고발했다.
남이는 그저 툭 뱉은 말이었지만 혹독한 고문을 받고 결국 자백을 해서 사흘 후에 거열형(팔고 다리를 각각 소나 말, 수레 등에 묶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당겨 온 몸을 찢어 죽이는 형벌)을 받게 된다.
말조심을 해야 하는 대목이다. 예종에는 발에 생기는 족질 병이 있었다. 재위기간이 1년 3개월으로 짧았다.
조선의 제9대 임금인 성종은 예종의 조카 자을산군이다. 왕위 계승 서열 3위 장인 한명회의 힘으로 왕이 되었으며 조선 고유의 법전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왕비 3명, 후궁 9명의 남편이지만 성종은 명실공히 조선 최고의 모범 임금이었다.
매일 유능한 신하들과 공부하고 토론하는 경연에 가장 많이 참석한 왕으로 25년간 연평균 369회, 총 9229회로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한 대단한 왕이었다. 성종의 2번째 왕비가 윤씨로 성종보다 12살 연상녀이다.
성종의 계비이자 연산군의 생모였던 윤씨는 성종의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며 비행을 저지르다 폐비가 되어 사약을 받는다. 경연을 부활하고 왕의 자문기관인 홍문관을 설치한 모범적인 임금이었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2년 07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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