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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192) 조선 임금님들의 이야기(Ⅲ)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2년 0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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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 ⓒ 횡성뉴스 | 연산군은 19세에 즉위하지만 중종반란으로 조선왕조 최초로 신하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 묘호도 없으며 연산군이라 불리운다.
연산군은 폭군으로 역사상 악덕과 살육을 저지른 임금이다. 연산군은 3세에 어머니 윤씨가 폐서인이 되어 6세에 사약을 받고 7세에 존재감이 없던 고독한 세자로 책봉된다.
복수의 칼날을 숨기다가 김종직이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비난하는 조의제문을 유자광이 연산군(수양대군의 증손자)에 알리자 김종직는 당시 이미 죽어서 부관참시(관을 절단하고 시신을 다시 베는 극형중의 극형)의 첫 번째 피바람이 불었다.
장녹수는 연산군보다 연상녀이지만 30대에도 16세와 같다고 실록은 전한다. 연산군의 사랑은 옥지화라는 기녀가 장녹수의 치마를 실수로 밟았다는 이유로 참형을 당할 정도였다. 천명의 기생 중에 재주와 미모가 뛰어난 기생들(흥청)과 향략을 즐겨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 ‘흥청망청’이란 말이 유래했다. 연산군의 폭정은 날로 심해져서 강화도로 유배되어 2개월 뒤에 병으로 숨졌다.
조선 11대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 진성대군으로 왕위에 오른다. 꿈에도 왕위에 오를거라 생각 못했던 왕자였지만, 자고 일어나니 왕이 된 사람이다. 중종을 보필할 인물이 개혁정치를 한다는 조광조였다.
무위자연과 신선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도교 제사를 지내는 조선의 관청인 소격서를 폐지한다. 대신에 지방의 질서를 안정시키는 자치규약 향악의 보급에 힘썼다. 조선시대 초고속 승진을 한 사람이 이순신과 조광조였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발발 1년전 류성용의 천거로 종6품 정읍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로 파격 승진되었다. 조광조는 중종 10년말 종6품이었으나 중종 13년 사헌부 대사헌 정2품이 되었다. 조선시대 관직은 1-9품이 각각 정과 종인데 정이 더 높은 관직이다.
조광조는 중종에게 경연의 공부에 힘쓸 것을 강조하며 사이가 멀어진다. 더욱이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훈구파는 조광조를 물리치고자 한다. 주초위왕 주(走) +초(肖)=조(趙)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중종은 훈구파가 들고 온 주초위왕이라고 쓰인 나뭇잎을 보고 조광조가 반역을 꾀했다는 훈구파의 말을 믿으며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려 목숨을 잃은 기묘사화가 발생했다. 후손들은 왕보다 개혁의지가 높았던 조광조를 더 기억하였다.
조선 12대 인종은 중종과 장경왕후 윤씨 사이에 태어났다. 인종은 3세부터 책을 줄줄 읽어 신동소리를 듣고 왕위에 오를 때까지 24년간 세자 수업을 받았다. 불행히도 세자 나이 30세에 즉위한지 9개월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 조선 27명 임금 중에 가장 재위기간이 짧다. 실록에는 금식을 했기 때문에 몸이 약해져 죽었다는 것이다.
인종은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 중종이 승하하자 상례중에 철저히 금식을 했다. 인종은 생모를 일찍 여의고 중종의 세 번째 부인이자 왕비인 문정왕후가 새 어머니가 된다. 인종은 서른이 넘도록 후사를 보지 못했다.
조선 제13대 명종은 인종의 이복동생인 경원대군이다. 12세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왕실의 최고 어른인 어머니 문정왕후가 8년간 수렴청정하며 조선 최고의 치맛바람을 일으킨 여성이다. 임금위의 여왕 문정왕후는 대규모 숙청을 일으켜 어머니의 그늘에 가린 존재감 없는 임금이었다.
임꺽정의 난은 조선 반란으로 조선의 부패, 극심한 흉년, 도적질 등으로 인한 백성들의 봉기였지만 나라가 흔들려 결국 임꺽정 세력도 토벌된다. 1555년 을묘왜변 때 왜구의 난립이 심해 비변사라는 기구를 두었다. 조선 수군은 강화되어 임진왜란 당시 큰 활약을 할 수 있게 된다.
명종이라는 이름을 후세에 알리지 못하는 왕이 되고 외척(어머니 문정왕후 쪽의 친척)간의 갈등인 ‘을사사화’로 더 많이 알려진다.
조선왕조 최초 후궁의 자녀가 제14대 임금 선조이다. 16세기 동아시아 최대 전쟁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일본은 조선 왕 선조를 잡고 조선군사로 명나라를 친다는 것이다. 선조는 한양을 떠나 개성 평양 의주로 옮겨 도망을 갔다. 선조는 “나는 피난을 갔는데 이순신은 영웅 대접을 받는다!” 라고 했다.
그러나 전쟁의 신 이순신은 7년동안 23전 23승리의 명장이었다. 선조는 전쟁의 승리는 재조지은(再造之恩) 조선정부가 다시 세워지도록 도와준 은혜)을 강조하며 친명정책을 만들었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2년 0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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