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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193) 조선 임금님들의 이야기(Ⅳ)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7월 20일

↑↑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횡성뉴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할 때 조선의 선조 다음의 후계자가 없었다. 다만 후궁 공빈 김씨와 사이에 장남 임해군과 광해군을 두었다.

임해군은 성격이 너무 포악하여 동생 광해군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겼고 결국 광해군은 조선의 15대 왕으로 즉위했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는 인기가 하락하고 광해군 인기는 상승하였지만 의인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51세에 19세 인목왕후를 맞이하여 적장자 영창대군을 낳았다.

왕비의 아들은 ‘대군’, 후궁의 아들은 ‘군’이라 불렸다. 영창대군이 3세가 되고 선조가 승하하자 3살이 왕이 될 수 없어 광해군이 왕에 올랐다.

최고 의서인 동의보감은 선조가 세상을 떠났을 때 허준에게 책임을 물어 2년간 유배 생활이후 한양으로 돌아와 허준이 완성하여 광해군에게 바쳤다.

광해군은 백성을 위한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실리적인 중립외교를 펼쳤다. 광해군의 대북파와 왕권의 위협적인 존재 영창대군의 소북파가 격돌하여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유배보내 골방에 불을 때서 증살(蒸殺)시키고 법적인 어머니 인목왕후를 가두고 동생을 죽이는 페모살제(廢母殺弟)로 인조반정이 발생했다. 끔찍한 사건으로 광해군은 49세에 폐위되었고 강화도와 제주도로 유배 생활 끝에 67세에 죽었다.

인조는 선조와 인빈 김씨 사이에 태어난 정원군(인조의 아버지)의 장남으로 제16대 임금이다. 인조는 친명배금으로 명과 친하고 후금을 배척하여 후금군대가 조선을 침공하여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을 가고 결국 후금과 화친을 맺는 정묘호란이 일어났다.

후금은 청나라로 바꾸고 조선을 압박하여 척화론자와 주화론자로 나뉘었고 결국 1636년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쳐들어와 병자호란이 발생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항복하였다.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와 차남 봉림대군은 인질로 8년간 청나라 수도 심양에 끌려갔다.

소현세자가 청나라 주요인물과 친하게 지낸 것에 인조는 무척 화가 나서 소현세자와 세자 빈에게 사약을 내리고 손자 셋을 유배보냈다. 여자들도 끌려가 성적 노리개용이 되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로 환향녀(還鄕女)라고 불렸다.

인조의 차남이었던 봉림대군을 세자로 앉히니 그가 바로 조선 17대 임금 효종이다.
병자호란과 인질 생활과 아버지 인조의 치욕을 설욕하기 위해 북벌정책을 주장하며 청나라를 정벌하고자 군사훈련에 힘쓴다.

그러나 효종을 따르지 않는 신하들이 많았다. 그동안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연이어 일어나 조선은 60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효종은 송시열을 통해 북벌을 실행하고자 하나 송시열도 동의하지 반대했다. 끝내 북벌 계획은 실패했다.

청나라 공격은 못하고 오히려 청을 도와 러시아를 정벌한다. 적을 치려고 키운 군사로 적을 돕게 되었다. 효종은 몸집이 크고 삼국지에서 관우의 큰 칼로 무척 무거운 청룡연월도를 거뜬히 들 정도로 어깨깡패로 불렸다. 그러나 머리에 난 종기 하나로 목숨을 잃었다.

조선의 제 18대 현종은 조선에서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왕이다. 아버지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 청나라에 인질로 가 있을 때 태어났다. 조선 최고의 논쟁인 예송논쟁은 효종이 승하하고 상복을 입는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2차례 논쟁한 사건이다.

조선시대의 옷이란 유교의 덕을 담은 하나의 예(禮)이다. 1차 논쟁은 사대부들은 1년만 입자고 서인들은 주장하지만, 남인들은 왕과 사대부를 구분하여 3년을 입어야 한다고 보았다.

현종은 집권세력인 서인의 편을 들었다. 현종은 두 번째 예송에서 남인의 손을 들어준 것은 권력이 강했던 서인(특히 송시열)을 견제하게 위한 방도였다. 현종은 서인의 편이었다.

조선 유일의 단 한 명의 아내 명성왕후를 맞이하고 후궁도 없는 임금이 현종이었다. 효종-현종-숙종은 아들 1명이 적장자로서 왕위에 올랐다.

적장자가 왕위에 오른 이는 7명(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숙종처럼 3대에 걸쳐 모두 외아들인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다른 임금들은 연산군을 제외하고 대부분 재위기간이 짧고 단명했기 때문에 약 46년 동안 재위한 숙종은 조선에서 두 번째로 재위기간이 길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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