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6-05-04 오전 09:42:43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오피니언

<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195) 조선 임금님들의 이야기(Ⅵ)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8월 03일

↑↑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횡성뉴스
제22대 이산 정조는 영조의 손자이며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냉대를 받았지만 정조는 영조의 극진한 총애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교육을 받고 왕위에 오른다.

정조는 열심히 동양철학과 역사서를 배웠고 왕립도서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여 실학자 정약용을 배출했다. 궁궐에서 10년간 침묵 후에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아버지 제사를 지낼 경모궁(景慕宮)을 조성하여 효심을 나타냈다. 조선 중흥을 위한 탕평책으로 남인은 물론 적대적인 노론의 수장 심환지와 정치적 사안을 조율했다.

정조는 화살 50발 중 49발을 명중하는 조선 최고의 신궁으로 무예에 뛰어났다. 조선 최고로 글을 많이 쓴 왕이 정조로서 세손부터 쓴 일기 ‘나는 매일 반성한다’ 일성록(日省錄)은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정해졌다. 백성과 소통을 위해 임금의 능행 행차는 66번으로 연평균 3회로 대단했다.

정조는 심신이 피로할 때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임진왜란 후 조선에 들어온 담배를 많이 피웠다. 아버지 사도세자 묘를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인 수원의 명장 자리로 이장한 직후 후궁 수빈 박씨에서 제23대 순조가 될 아이를 낳았는데 그 날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 생일과 같았다.

화성 축조 때 백성에게 월급을 주어 조선 최초로 임금 노동자를 고용했다. 수원 화성 행차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었다.

제23대 순조는 11세 나이에 즉위하여 증조할머니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한다. 순조는 세도정치, 외척정치(어머니의 친척)를 하였고 조선후기 청나라를 통해 서양의 학문 서학(西學)이 유입되었는데 신유박해로 천주교도 박해가 시작된다.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도 천주교를 접했다는 이유로 18년 귀양생활을 했다.

조선 24대 헌종은 요절한 효명세자의 외아들로 할아버지 순조의 건강이 악화되자 왕세손으로 책봉 후 8세 나이로 조선 최연소 왕으로 즉위한다.

헌종 역시 세도정치로 외척이던 풍양 조씨 가문이 권세가 높아 백성들 삶이 어려웠다. 오가작통법으로 다섯 집을 묶어 천주교 신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나머지 네 집도 엄한 처벌을 받아 서로를 감시했다. 1839년 기해박해로 이웃 간 정이나 연대의식은 사라지고 삭막한 사회가 되었다.

조선 제25대 철종은 헌종이 후사가 없어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손자 이원범이다. 강화도에서 나무을 베며 생계를 꾸리던 사람이 한 나라의 왕이 되는 조선판 신데렐라 임금이다.

조선 14대 선조보다 더 심한 방계 중의 방계 출신의 왕이다. 60세가 넘은 노인에게도 세금을 거두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세금을 내는 백골징포가 성행했다. 관리의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철종은 안동 김씨 가문의 딸을 왕비로 삼아 안동 김씨의 권력 밑에서 자리만 보전하다가 후사 없이 33세 나이에 병으로 승하한다.

조선 제26대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아들이며 대한제국 제 1대 황제이다. 사도세자와 숙빈 임씨 사이에 은신군은 남연군(양자)이 있었고 남연군의 아들이 흥선대원군이다.

고종이 12세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라 흥선대원군의 10년 정치로 왕권을 강화하고 통상수교를 거부한다. 프랑스와 병인양요, 미국과 신미양요 전쟁을 치루며 오랑캐와 교류는 나라를 파는 행위라는 척화비를 전국에 세운다. 조선이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여 고종은 망국 군주가 된다.

1894년 청일전쟁이 한반도에서 발생하여 을미사변인 고종의 왕비 명성왕후가 일본 자객에 의해 피살되자 고종은 러시아에 신변보호를 요청한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해 조선 외교권이 박탈된다. 고종 독살설도 있지만 고종 장례식을 바탕으로 3·1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조선 제27대 순종은 대한민국 제2대 황제로 나라를 빼앗겼고, 병약했던 조선 마지막 임금이었다. 아버지 고종이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강제 퇴위당하자 이를 대신해 순종이 즉위한다.

고종과 순종은 당시 상황에 반발로 양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결국 다른 두 사람이 대리로 양위식을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1910년 조선의 주권을 빼앗은 일본은 한일병합조약을 발표하여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세운 500여년 유지된 조선왕조는 경술국치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순종은 창덕궁에 거주하여 ‘창덕궁 전하’가 되었다. 순종의 이복동생 영친왕과 덕혜공주는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인과 강제로 정략결혼을 시켜 ‘조선과 일본은 하나’라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표방했다. 유구한 역사는 침략, 혁명으로 점철되나 인조반정은 성리학적 기준으로 반정(反正)이라고 표현한다.

반정은 옳은 정치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조선왕조 27대 왕들은 모두 나름대로 옳은 정치로 돌아가고자 힘쓴 정치문화였지만 백성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달랐다. 역사는 기록한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정도(正道)와 올바른 정통성에 기반을 둔 기록이 되어야 후세에 올바른 가르침이 될 것이다.

역사가 없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반성하고 올바른 역사를 배우고 실천하는 모습이 절실하다.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조선왕조 518년의 역사 교훈을 뼈저리게 되새기고 내일을 설계해야 한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8월 03일
- Copyrights ⓒ횡성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19,514
오늘 방문자 수 : 22,069
총 방문자 수 : 32,247,755
상호: 횡성뉴스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횡성읍 태기로 11, 2층 / 발행·편집인: 안재관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광용
mail: hsgnews@hanmail.net / Tel: 033-345-4433 / Fax : 033-345-443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강원 아 00114 / 등록일: 2012. 1. 31.
횡성뉴스(횡성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