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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198) 여성의 힘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9월 06일

↑↑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횡성뉴스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국가였다.1400년 전쯤 신라의 27대 선덕여왕이 우리의 최초 여성 지도자이다.
신라 3대 여왕으로 선덕여왕, 28대 진덕여왕, 51대 진성여왕이 있었다.

선덕여왕은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룩하는 기틀을 다진 당찬 여왕으로 평가받는다.

왕권을 강화하고 재난을 당한 사람이나 빈민을 구제하는 구휼(救恤)사업으로 민생을 향상시키며 첨성대와 황룡사 구층탑을 건립하였다.

황룡사 구층목탑은 아홉 무리의 오랑캐가 무릎을 꿇을 것이라 조언하였고, 탑의 높이가 80미터로 아파트 30층 높이의 어마어마한 축조물이다.

또한 해외에 유학생을 파견하고 불법(佛法)을 들여오는 등 당나라 문화의 수용에도 힘썼다. 선덕여왕은 어질고 총명하며 재색을 겸비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여성가족부는 2010년 3월 개편되어 남녀 모두가 조화롭고 평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성별에 관계없이 개인의 능력과 소질을 계발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지향한다.

여권신장은 여성과 남성의 권리 중 여성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혹은 남성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되는 권리들을 형평성에 맞게 고쳐나가는 개념이다. 반면 양성평등은 성별 고정관념에 구속됨 없이 자유롭게 능력을 개발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원칙을 말한다.

고종의 비(妃) 명성왕후와 조선의 19대 환국 군주이며 소년 군주로서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다른 인물이다. 조선 27대 임금 중 제일 무능한 왕으로 임진왜란에 자기 목숨만 보전하고자 도망쳤던 선조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시절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그러나 명성왕후의 최후의 명대사는 우리 산천초목을 흔들었다. “내가 조선의 국모다. 어디 나를 죽여보아라, 나를 죽이면 조선의 혈기가 하늘을 치솟을 것이다. 내가 너희들의 만행을 다 내 눈 속에서 담아서 갈 것이니 내 백성이 어찌 오늘의 일을 잊겠느냐”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 즉 우리나라 국모의 애국하는 힘은 강했다.

유태인의 아버지가 유태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도 어머니만 유태인이면 그 자녀는 유태인이다. 반대로 아버지는 유태인이라도 모친이 이방인이면 그 자녀는 유태인이 될 수 없다. 이는 아버지 핏줄보다 가정에서 자녀를 기르고 가르치는 어머니(밭)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지만 양날의 칼 내지는 약 대신 독이 되기도 한다.

공자의 말씀에 군자지덕풍 소인지덕초(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가 있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바람이 부는대로 풀은 땅에 눕게 된다. 국가와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탐욕에 밝은 소인이 아니라, 인의(仁義)에 밝은 군자이다.

중국 요순(堯舜)의 백성은 태평성대를 이룬 성군 요임금과 순임금처럼 착했고, 폭군인 하나라 걸(桀) 임금과 은나라 주(紂) 임금의 백성은 주(紂) 임금처럼 포악했다. 걸 임금은 말희라는 여색에 빠져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음탕한 생활을 했으며, 주 임금은 달기라는 절세 미녀인 애첩에 빠져 나라가 망했다.

신사임당은 조선의 여류문인이며 천재 화가였다. 율곡 이이를 낳은 훌륭한 어머니로서 48세에 작고할 때까지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상징인물로 5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추앙을 받는다.

신사임당은 재능에 따라 맞춤형 교육으로 율곡에게 학문을 이끌어 13세 때부터 장원급제를 하더니 총 9번 과거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고, 후에 성리학의 대가이자 정치가, 교육자가 되었다.

막내아들 이우와 큰 딸 매창에게는 예술적 재능을 발견한 어머니의 교육으로 이우는 시(詩), 서(書), 화(畵), 거문고를 잘하여 사절(四節)와 초서의 대가로 이름을 얻게 된다. 또 큰 딸 매창은 시문과 그림에서 빼어난 재주를 보여 ‘작은 사임당’으로 불리웠다.

고려 제31대 공민왕은 중국 원나라 황실 가문의 딸 노국공주와 정략결혼을 하였는데 공민왕은 원나라 배척운동에도 노국공주를 무척 사랑했다.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안동까지 피난을 갈 때 공민왕은 큰 개울을 건너면서 노국공주가 물에 젖지 않도록 온 동네 여자들이 개울물에 엎드린 등을 밟고 건너가게 할 정도로 사랑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안동의 풍속인 놋다리밟기의 유래가 된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은 남자 영웅이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사람은 여성의 세계이다. 여성은 지구를 존속시키는 생명의 근원이자 위대한 힘이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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