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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207) 공감 능력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1월 30일

↑↑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횡성뉴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미래 한국인의 핵심역량 덕목 중에 대인관계능력, 의사소통능력, 시민의식 등이 공감(共感)과 한 몸이다. 공감은 남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끼고 나누는 것이다.

공감은 개념(槪念)이고 공감능력은 행동(行動)이다. 나눔이나 베풂은 인격적 행동을 부르는 요소이다. 따라서 우는 사람과 함께 울어주고, 아픈 사람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 공감능력이다.

기쁨은 나누면 갑절이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는 것을 체득하고 몸소 실천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문과 벽, 그리고 칸막이와 울타리가 존재한다. 한낱 미물(微物)도 자기보호 본능으로 저마다 자기 벽을 치고 산다.

그 자체가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폐문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생명 자체가 위험하다. 문을 열고 방과 방 사이를 환류, 순환, 소통시키는 것이 공감(sympathy)이다. 우리사회가 더 좋은 사회로 도약하려면 사회구성원 간에 정(情)을 느낄 수 있는 사회, 곧 감성지수가 높은 사회이어야 한다.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는 인격적인 교감이 마음의 문을 여는 공감의 핵심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보복운전, 데이트 폭력 등 보복의 사회가 되었다. 보복은 공감능력과 정반대이다. 보복을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보복에 너무 익숙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나온 폴리마르쿠스의 의견이다.

폴리마르쿠스는 친구에게 선을 베풀고 원수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함무라비 법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표현되는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이 있다. 호메로스와 동시대인이었던 그리스의 헤시오도스는 탈리오 법칙보다 더 나아간다. “적이 당신에게 해로운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반드시 두 배로 갚아 주어야 한다.”

그는 한쪽 눈이 훼손되면 상대방에게 한쪽 눈을 요구했던 함무라비 법전의 규정보다 훨씬 더 복수심에 물들어 양쪽 눈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폴리마르쿠스에게 반론하였다.

정의로운 인간이란 친구에게 선을 베풀고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도 선을 베풀어 적을 친구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와같은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도 내밀라는 성경의 내용과 같다.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라고 한다. 적과 소통하면 영원한 적은 없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복수를 단호히 금지하는 다섯 가지 원칙을 밝힌다.

첫째, 우리는 절대로 불의(不義)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불의를 불의로 되갚아서도 안 된다.
셋째, 타인에게 악행을 해서는 안 된다.
넷째, 악을 악으로 갚아서도 안 된다.
다섯째, 타인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의 사회도 복수주의와 결별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공감능력을 높이는 길이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내 가족처럼 남을 사랑하며, 나의 이익보다 타인 이익을 추구하는 공감(共感)의 힘은 위대하다.

공자(孔子)의 마구간에 불이 났다. 조정에서 퇴근한 공자는 “사람이 다쳤느냐? 라고 물었지만 말(馬)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사람은 ‘인(人)’이 아니라 사람 사이(관계)를 중시하는 ‘인간(人間)’이다.

인간의 본성은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으로 곧 감성능력이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이 규형을 이룰 때 조화로운 인격이 형성된다.

감성만 있고 이성이 죽었다면 불안한 존재이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룰 때 타인에 대한 이해, 배려, 인간애가 돈독하고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 발전해 나갈 수 있다.

도덕의 뿌리는 이성이 아닌 감정에 있다. 맹자의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은 누가 물에 빠졌을 때 참지 못하여 구해주는 마음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천지지대덕왈생(天地之大德曰生) 이 세상을 유지하는 가장 큰 덕은 생명을 살리는 인(仁) 정신이다. 인(仁)은 살아있는 생명력이고, 불인(不仁)은 굳어져 죽어 있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자애감(自愛感)이며 따뜻한 사회를 이룩한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공감능력의 창조적 행위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든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2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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