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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218) 변화은 있고 변함는 없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3년 03월 22일

↑↑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횡성뉴스
인생은 B(탄생 birth)로 시작해서 D(죽음 death)로 끝난다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탄생의 순간부터 계속 죽음으로 돌진한다.

다행스런 일은 B와 D사이에 C(변화 change)를 통해 기회를 얻는다.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 언제나 변화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 변화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 등 이 있다.

기회란 오직 의지로 선택하고 변화되어질 때 자신의 것이 된다. 변화가 없으면 기회도, 성공도 없다. 이렇게 변화를 통해 얻는 기회(chance)는 성공과 희망의 열쇠가 되므로 그 D도 죽음(Death)이 아니고 이상적인 꿈(Dream)으로 승화되어 영원한 행복을 안겨 줄 것이다.

주역(周易)에 보면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궁지에 몰리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통하면 오래간다. 그러나 또 오래가면 다시 궁해져서 또 다시 변해야 하는 법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함의 영속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꺼이 변화를 주어야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의지(意志)는 변함이 없어야 성공한다. 인생사 새옹지마(人生事 塞翁之馬)라고 한다. 변방 노인의 말(馬)처럼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될 수 있다. 즉 세상의 일의 좋고 나쁨을 미리 예측할 수 없이 변화무쌍하다.

“내가 누구인지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세익스피어의 <리어 왕>의 한 구절이다. ‘나’를 정의해 보자. 과연 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무척이나 난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시민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만족할 만한 정의는 아니다.

나는 기독교인일 수도 있고, 횡성에 사는 주민일 수도 있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매우 좋아하는 소비자일 수도 있고, 한 집안의 가장(家長)일 수도 있다. 그 수많은 ‘나’중에서 어떤 나를 진정한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를 규정짓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알에서 올챙이로, 올챙이에서 개구리로 변화하듯 인간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육체도 정신도 변화한다. 능력도 변화하여 덧셈을 겨우 하던 아이가 수학자로 성장하고, 글자를 겨우 읽던 아이가 소설가로 변화되기도 한다. 학교 다닐 때 ‘찌질이’였던 소년 에디슨이 발명왕으로 거듭나는 것을 보면 열등생은 늘 열등생에 머물지 않는다.

항상 변화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하나의 도토리가 우람한 떡갈나무로 성장하듯이 지금 형편없이 초라하기 그지없는 사람도 위대한 인간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해서 “너는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말은 결국 너는 나쁜 인간이고, 너의 나쁨은 변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고, 애초부터 너는 틀려먹은 인간이라는 이야기로 완전히 잘못 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한 사람을 섣부르게 규정하면 안 된다.

한 엿장수가 중이 되기 위해 찾아왔다. 그는 평안도 양덕에서 태어나 평양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조선인 최초로 일제의 판사가 된 이찬형이었다.

판사로서 출세가도를 달리며 삼남매의 자식을 둔 그가 왜 중이 되려고 했는지 그 사연은 이렇다. 1919년 수많은 동포가 조국독립을 위해 몸을 던졌다. 그러나 판사 이찬형은 독립투사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했다. 이 사건으로 이찬형은 깊이 고뇌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아내에게 출장을 간다고 둘러대고 집을 나와 판사직도 가족도 모두 던져 버렸다.

그는 엿판을 등에 메고 3년간 방황했다. 그는 마침내 새 사람이 되기위해 신계사를 찾았다. 38세 늦은 나이에 머리를 깎고 무섭게 정진했다. 엉덩이 살이 헐고 진물이 나서 방석과 들어붙을 정도였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 죽음마저 불사하는 용맹한 정신으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매서운 정신의 소유자가 바로 후대 조계종 초대 종정이 된 효봉 스님이다. 판사에서 엿장사로, 엿장사에서 스님으로 이찬형의 삶은 대단한 변화 그 자체였다. 지금의 내가 나의 전체가 아니다. ‘나’를 다른 ‘나’로 바꾸었던 이찬형은 청소년을 위한 인생 멘토가 되었다.

이찬형처럼 자신의 삶을 바꿔갈 수 있는 힘, 바로 변화이다. 나이가 들면 체력은 떨어지고, 총기는 약해져서 자신을 변화시키기가 어렵다. 그러나 의지와 뜻만 있다면 얼마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생각대로 설계할 수 있다. 과거는 문제되지 않는다. 새로운 삶을 끌어안음으로써 얼마든지 과거와 작별할 수 있다. 어떻게 사는 삶이 진짜 삶일까? 변화는 그런 고민없이는 만들 수 없다.

장발장이 전과자에서 자신의 몸을 빼내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듯이 “나”도 나의 변함없는 의지로 변화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 질 것이다. 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어야 한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3년 0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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