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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230) 따뜻한 배려(配慮)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3년 0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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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원 명 전 횡성향교교육원장 |
| ⓒ 횡성뉴스 | 인성교육진흥법의 인성실천의 8대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배려(配慮)이다. 배려는 개인이나 사회를 따뜻하게 만든다. 배려는 나눔이다.
조선 중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300년, 12대에 걸쳐 이어온 엄청난 부(富)를 빈민구제와 독립운동에 헌신한 경주 최부자 일가(一家)의 곳간에서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는 가훈이 발견되었다.
사방 1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면 곡창을 열어 먹여 살릴 것, 흉년기에 재산을 늘리지 말 것, 재산을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 것 등 나눔을 실천했다. 자처초연 대인애연(自處超然 大人靄然)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남을 온화하게 대함이 배려이다.
역린(逆鱗)은 용(龍)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로 건드리면 용이 사람을 죽인다. 이는 남의 아픈 상처를 건들지 말고 남을 배려하라는 의미이다. 아부(阿附)란 부모가 자식에게 아부하고, 교사가 학생에게 아부하고, 국가 지도자가 국민에게 아부하면 나라가 망한다. 아부를 하지 말고 배려를 하라는 뜻이다.
사람의 정상 체온이 36.5도처럼 남을 1년 365일 따뜻하게 배려해야 한다. 우분투(Ubuntu)는 남아프리카 나탈족의 인사말이다. 아침에 누구나 상대방을 보면 ‘사우보나’(나는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시코나’(나는 여기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상대방이 나를 보아주기 전 까지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나를 보아 준다면 그때부터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분투 정신은 상호 존중과 배려 문화의 실천이다.
논어(論語)에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자 마라!’ 이 말은 간단하지만 평생 행하기 힘든 인(仁)에 대한 공자(孔子)의 가르침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 덕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중궁(仲弓)이 인(仁)을 질문했다. “문밖에 나가면 만나는 모든 사람을 대빈(大賓) 큰 손님 만나듯 하라! 아랫사람을 부릴 때는 마치 큰 제사 받들 듯 신중히 하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그러면 국가이든 집안이든 어느 누구도 그 지도자를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먼저 배려하면 상대방이 나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인(仁)은 결국 배려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배려가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회사는 고객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구직자는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가족은 서로의 입장에서 헤아릴 때 더욱 행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큰 힘은 배려이다. 나에게 인(仁)을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먼저 베풀라! 그러면 반드시 상대방이 감동할 것이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고통을 내가 솔선수범해서 짊어지기보다 상대방에게 전가하려 한다. 구조조정을 하면 당신이 먼저 나가야 하고, 월급을 깎으면 당신 월급 먼저 깎여야 한다는 상대방에 대한 아무런 배려도 없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사람들의 이기주의가 난세에는 더욱 팽배한 형편이다.
논어에는 인(仁)에 대한 언급이 100여 차례 이상 등장함은 배려의 실천을 촉구하는 말이다.
논어(論語)에 덕(德)을 닦아서 스스로 강해지는 수덕자강(修德自强)과 자기를 수양함으로써 남을 다스리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수덕(修德)과 수기(修己)를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을 먼저 다스려야 원만한 배려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자유를 열망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 자유는 남을 배려하는 토대 위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은 데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는 방종과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간혹 배려는 커녕 상대방을 공격을 하는 경우가 있다. 공호이단 사해야이(攻乎異端 斯害也已)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하여 공격하면 이것은 손해가 될 뿐이다. 오로지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나만이 정통이고, 남은 이단(異端)이라는 편견과 고집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 다름이 인정되는 사회, 위대한 화합을 이루어낸 세상은 우리 인류가 꿈꾸어야 할 아름다운 미래이다. 나와 다른 관점, 종교, 사상, 철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면 큰 불행을 초래한다. 위타위기(爲他爲己) 남을 위하는 일이 결국 나를 위하는 일로 배려(配慮)가 답이다.
※ 그동안 ‘내 마음의 보석상자’를 읽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기고를 해주신 현원명 전 횡성향교 교육원장님께서 건강 상의 이유로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기고를 중단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  입력 : 2023년 0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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