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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홍 명 본지 객원 컬럼위원 |
| ⓒ 횡성뉴스 | 도대체 북한을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적절한 것일까?를 항상 고민한다.
내 기억과 상식으로 이런 국가(?)는 없었다.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국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용어사전에 나와 있는 어떤 나라의 형태로도 설명되지 않고, 있을 수 없는 짓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나마 가장 근접한 것이 있다면 신권국가(神權國家)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그 정도는 가볍게 넘어선다. 대명천지에 세습이라니 기가 찰 일이다.
백번 양보하여 세습은 그렇다 치더라도 2,600만 명의 주민을 거대한 감옥에 가두어 놓고 있으니 그 재주는 신통방통을 넘어 놀랍다.
평범한 북한 사람들은 여권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른다고 한다. 마치 짐케리가 주연했던 ‘트루먼 쇼’의 연기자처럼, 자신이 누구인지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굶주리며 살아간다.
최근 중국은 우리나라와 체코 정부의 탈북자 강제송환 중단요청을 공식 거부했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경제적 이유로 중국에 불법 입국한 북한 사람은 난민이 아니다”는 것이다.
송환되면 가혹한 구타와 구금, 박해가 뻔히 예상되는 경우 추방 또는 송환해서는 안 된다는 유엔 난민협약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도대체 이런 나라가 유엔의 상임이사국이라니….
지난해 있었던 항저우아시안게임 때에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꺼려 탈북민을 모아놨다가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수백 명을 한꺼번에 송환했다니 그 용기가 참 대단하다. 숨길 것이 왜 그리도 많은지 강제송환에 관한 정확한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으니 뭘 숨기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과거에는 휴전선을 넘어 월남한 사람들을 ‘월남인’,‘귀순자’,‘귀순 용사’,‘새터민’ 등으로 불렀다. 글자 그대로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을 의미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부터 경제난으로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자연히 ‘탈북자’라는 표현이 보편화되었다.
이후 1997년에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귀순’의 개념이 ‘북한 이탈’로 변하고 ‘북한이탈주민’을 줄여 ‘탈북민’이라는 명칭이 법적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근데 여기서 이상한 것이 있다. 이탈(離脫)이라는 단어를 법률용어로 채택한 것이다. ‘이탈’이라는 단어는 일탈(逸脫)과 함께 부정적인 의미를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예를 들어 근무지 이탈, 일탈 행위 등 뭔가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날 때 이런 단어를 사용한다.
분명한 팩트는 극악의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것인데 ‘이탈’이라는 이상한 단어를 채택함으로서 의미를 헛갈리게 만든 것이다.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아프리카 사람들, 사막을 건너 미국으로 향하는 중남미 사람들…. 우리는 모두 이들을 자연스럽게 난민이라 부른다. 근데 머리 좋은 국회의원님들이 왜 ‘난민’ 대신 말도 안 되는 ‘이탈주민’이라는 해괴한 단어를 선택했을까? 중국도 핑곗거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탈주민이라 했으니 난민이 아니라 불법입국자라는 것이다.
1997년 이 법을 만든 국회의원님이 어떤 분인지 꼭 보고 싶다. 어떤 의도에서 난민 대신 이탈주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도 묻고 싶다.
그분들이 아직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당장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도대체 이탈주민이 무슨 말인가?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을 억지로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원인 제공자, 그 장본인을 보고 싶다.
알려드립니다.
‘북한이탈주민’이 아니라 ‘북한탈출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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