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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홍 명 본지 객원 컬럼위원 |
| ⓒ 횡성뉴스 |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판사를 비롯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법부의 중립에 대한 가치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도 같이 무너진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사법부를 소중히 여기고 온갖 오염원으로 부터 보호해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길이다.
판사도 사람이다. 아무리 양형규정이 있다할지라도 그 판결은 판사의 가치기준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있다.
우리사회는 각기 다른 개인의 가치기준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무식한 사회는 아니며, 적어도 각기 다름을 이해하고 그것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큼 성숙한 사회라고 본다.
모든 판결이 절대적인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 애초에 제척이나 기피·회피 등의 제도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사법부의 판단을 여론조사라는 명목으로 흔들거나 판사 개인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아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는 야만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다.
판사라는 직업은 발은 바쁘게 움직일찌라도 겉은 물위에 고고히 떠 있는 백조여야 한다. 판사가 판결을 함에 있어 이념이라는 굴레에 빠졌다고 의심받는 순간 그 판결은 결국 오염된 판결이 되고 승복할 수 없는 판결이 된다.
사법부 하나회라 불리는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군부정권에 맞서 몇몇 소장판사들이 설립한 학술모임이다. 2010년 발간된 눈문집에는 약 60여명의 판사가 이름을 올렸지만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은 강금실 법무부장관, 박시환 대법관 등 노무현 정부 때부터 요직에 발탁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때에는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 김명수를 대법원장에 임명하면서 사법부 주요 핵심보직에 대거 발탁되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여지없이 8명의 판사 중 3명이 우리법연구회 소속인데 나머지 1명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판사로 채우려 기를 쓰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굳이 좌편향 이념으로 오염되었다고 의심받는 특정 단체의 판사를 임명하겠다는 고집은 뭘까? 일반 법원과는 달리 헌법재판소는 단심제로서 한번의 판결로 구제방법 없이 모든 것이 종결된다.
얼마 전 임명된지 이틀밖에 안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 심판이 있었다. 여지없이 우리법연구회 소속 재판관을 비롯한 4명은 찬성을 했고 나머지 4명은 반대를 함으로서 탄핵은 실패로 끝났다.
우연일까? 임명된지 이틀 만에 탄핵의 대상이 된 것도 괴이하고, 좌편향이라고 의심받는 4명의 재판관 전원이 탄핵에 찬성한 것도 이상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어떤 모양으로 결론 나더라도 국민적 저항과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백조와 같이 우아하고 근엄하게 상석에 앉아 아랫것들을 내려다보면서 솔로몬과 같은 판결해야할 재판관들이 이제 사면초가가 되었다.
우리법연구회는 지난 35년 동안 끊임없이 이념적 집단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해체 되었다고는 하나 정말 해체된 것인지도 명확히 알 수 없다.
사법심판의 대상이 되는 모든 정치인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공정한 판결을 기다리기 보다는 담당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은 아닌지, 또는 극우성향은 아닌지 얼굴을 본다. 이래가지고서야 누가 그 판결을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양심껏 판결해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공정한 심판이 아니다.
간단하게 끝낼 것이라 믿었던 대통령 탄핵은 국민적 저항이라는 사상초유의 국면을 맞이했다. 여기에 더해서 좌편향 판사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인식도 빠르게 확산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사법부의 불신을 만들었나?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말하고 따질 것도 없이 정치인의 책임이다. 많고 많은 판사 중에 지금도 굳이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를 헌법재판관에 임명하려 혈안이 되어있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판사가 없나? 그 의도가 너무도 뻔히 보여 할 말이 없다.
정치인들이여! 제발 사법부만이라도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가만히 두심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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