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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244) 공동체 정신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5년 02월 28일
↑↑ 현 원 명
본지 객원 컬럼위원
ⓒ 횡성뉴스
우리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가면 좋다. 또한 지금 혼자서 빨리 가고 있는가 아니면, 동행을 구해서 멀리 가고 있는지 자문해 보자. 과연 가정과 사회에서 혼자 빨리 가려는지, 가족과 남편 직장동료와 동행하여 함께 가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직장과 사회에서 구성원과 협조하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또한 빨리 가는 것보다 과연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하다. 공동체 의식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구동존이(求同存異)로 같은 것은 구하고 다른 것은 존중하라, 다른 것을 틀린다고 생각하지 마라, 다름을 인정하고 공통과제를 추구하는 같은 배를 탔다는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너와 내가 하나라는 동류의식보다는 너와 내가 다르다는 이질감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졌다. 논어(論語)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요,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했다. 화이부동은 다른 사람과 화합을 하지만 남들과 똑같지는 않다. 

동이부화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면서도 화합하지 못함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화이부동 보다는 동이불화가 넘쳐나고 있다. 프랑스 학술원에서 톨레랑스란 막을 수 없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정신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톨레랑스의 뜻은 프랑스가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공존의 원칙으로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종교 사상 신념을 용인함으로써 공존을 가능케 하는 덕목을 지칭한다. 논어가 전하는 화이부동 역시 관용과 배려의 중요함을 불변의 진리로 가르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렇게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기초하여 서로 갈등하는 다양한 집단에서 공존을 가능케하는 덕목이 화이부동이며 톨레랑스이다. 내가 관용을 베풀 때 우리는 서로 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팔꿈치 사회는 옆 사람을 팔꿈치로 치고 밀며 너 죽고 나만 살자는 나쁜 사회이다. 

하이파이브 사회는 스포츠 승리, 좋은 일에 두 손을 들어 서로 상대방과 손바닥을 마주쳐 화합, 협력하는 공존을 넘어 상생하는 좋은 사회이다. 공존이란 단순히 함께함이다. 상생은 둘 이상이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상호 윈윈하여 누이 좋고 매부 좋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이다. 

또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자애감(自愛感)이며 따뜻한 사회를 이룩한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공감능력의 창조적 행위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든다. 우분투(Ubuntu)는 남아프리카 나탈족의 인사말이다. ‘사우보나’(나는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아침에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말을 하면, 상대방은 ‘시코나’(나는 여기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이는 누군가 나를 보아주기 전까지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나를 보아 준다면 그때부터 나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함께 있어 내가 있다는 관계를 중시하는 우분투 정신은 상호존중, 가족, 사회 공동체 의식 제고이며, 사랑보다 존중이 먼저인 것이다. 한 마디로 나 중심에서 우리 중심으로 공존을 넘어 상생해야 한다. 우분투는 평화운동에 뿌리를 둔 인간애로서 관계에 방점을 둔 인본주의 사상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미래 한국인의 핵심역량 덕목 중에 대인관계 능력, 의사소통능력, 시민의식 등이 공감(共感)과 한 몸이다. 공감은 남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끼고 나누는 것이다. 공감은 개념(槪念)이고 공감능력은 행동(行動)이다. 

나눔이나 베풂은 인격적 행동을 부르는 요소이다. 따라서 우는 사람과 함께 울어주고, 아픈 사람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 공감능력이다. 기쁨은 나누면 갑절이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는 것을 체득하고 몸소 실천해야 한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가라 한다. 부모와 학부모의 거리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의 운니지차(雲泥之差)이다. 

한 부족의 아이들에게 달콤한 딸기가 가득 찬 바구니를 놓고 가장 먼저 바구니에 달려간 아이에게 딸기를 준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도착해서 모두 같이 딸기를 먹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 있어요?”를 합창했다고 한다. 이것이 나보다 우리 중심의 공동체 정신이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5년 0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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