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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원 명 본지 객원 컬럼위원 |
| ⓒ 횡성뉴스 | 사랑은 본래 사랑 애(愛)가 아니었다. 사랑 = 사량 즉 ‘생각 사(思)+헤아릴 량(量)’으로 생각에서 사랑이 시작되었다.
육체적인 에로스(Eros) 사랑, 비성적(非性的)인 플라토닉 사랑, 친구간의 필리아 사랑, 부모 자식간의 스트로게 사랑이 있으나 무조건적인 아가페(Agape) 사랑이 더 위대한 이유는 amor vincit omnia,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하기 때문이다.
사랑 = 자비 = 인(仁), 기독교 예수의 사랑, 불교 석가모니의 자비, 유교 공자의 인 사상은 동일하다.
사람의 정상 체온이 36.5도 이다. 이는 1년 내내 따뜻한 사랑과 자비 그리고 인을 베풀라는 의미이다.
사랑은 간단한 수학문제이다. 2+2=4, 이해에 이해를 더하면 사랑이 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기 인생에서 자존심을 빼고 사랑과 희생을 곱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못 푸는 사람이 아주 많다. 사랑의 방정식은 풀어봐야 해결된다.
사랑은 힘이 세다. 천년바위 같은 사람도 사랑이 찾아오면 흔들바위가 된다.
바올이 <고린도 사람에게 보내는 첫 편지> 제13장에서 사랑에 관한 말은 그 어떤 말보다도 더 위대하다. 이 장의 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이처럼 언제까지나 남아 있는 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세 가지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사랑이니라.” 사람을 발음하면 입이 닫히고 사랑을 발음하면 입이 열린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이다. 바울의 고린도 사람에게 보내는 첫 편지 1장을 읽어보게 되면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목표도 없고 자신의 기준도 잃고 만다.
컨트리 가수 조니 캐시는 10년 동안 마약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캐시는 여행의 피로와 고독을 달래기 위해 각성제를 복용했다.결혼생활에도 실패하자 술집에 파묻혀서 술과 마약에 젖어 있었다.
이때 그 지역 조지아주 라파이에트 구치소에 수감되었는데 주 장관 존스는 다음 날 아침 캐시에게 마약을 돌려주며 말했다. “나는 TV와 라디오에서 들었어요. 당신이 부른 찬송가의 레코드도 가지고 있구요. 아내와 나는 당신의 최고 팬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여기에 끌려왔을 때 나는 가슴이 무너졌어요. 당신을 여기서 본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자, 마약을 돌려줄 테니 나가시오. 당신의 인생 아니오? 당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요.
당신을 죽이든 살리든 당신의 자유 의지에 달렸지요.” 이 말이 가슴깊이 박혀 캐시는 눈을 떴다. 1개월 동안 마약을 끊기 위해 싸웠다. 그것은 극한의 고통이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사랑해야 내가 살고 타인도 사랑하며 남에게 봉사하고 즐거운 가수 생활도 있다는 것이다.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 자, 그는 죽은 자이다. 성공하려고 하지 않는 자, 그도 죽은 자이다.
삶과 죽음 중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변화하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 변화를 꿈꾸면서 타성에 젖어 있는 우리를 일깨우는 것은 사랑과 변화로 기상나팔 소리와 같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사랑은 남에게 주면 줄수록 늘어난다. 체내에 있는 감기 바이러스도 폭발적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증식하는 것과 같다.
자기 속에 가두어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주지 않으면 힘의 근원이 될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사랑은 행동이다. 그리고 사랑은 동력이다. 사랑을 제약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연소가 불완전하면 엔진이 시동을 못하는 것과 같이 제동을 걸면 사랑도 꺼질 것이다.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은 용서이다. 용서를 바라는 측이나 용서를 하는 측 모두 용기가 필요하다.
용서할 때는 완전히 용서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90%는 용서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것이다. 용서는 하되 두 번 다시 자기의 언행이 나쁜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결심이 드러날 때까지는 용서한 것이 아니다.
코리 텐 붐은 자신의 저서<내 숨을 곳>에서 여동생을 나치의 가스실에 몰아넣은 사람과 몇 해가 지난 후 만났을 때의 일을 썼다.
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용서했다. 그 결과 그 사람의 인생은 극적일 정도로 호전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용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한 인간의 인생을 부활시킨 만큼의 큰 용서에는 사랑이 있었다.
용서하는 것도 기쁘고 용서받는 것도 기쁘다.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하여 위대한 힘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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