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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보석상자 (268) 행복(幸福) 이야기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01월 05일
↑↑ 현 원 명
본지 객원 컬럼위원
ⓒ 횡성뉴스
나에게 무슨 행복이 올 것이며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느냐고 한탄하지 말며, 또한 나는 가질 만큼 가졌으니 나에게 무슨 불행이 있겠느냐고 말하지도 마라! 사람은 행복할 때는 불행을 잊고, 불행할 때는 행복을 잊는다. 

단 한 시간의 악(惡運)이 행복한 일생을 뒤엎는다. 사람의 인생은 마지막 날에야 드러난다. 

누구를 막론하고 죽기 전에 행복하다고 말하지 마라. 그의 행복과 불행은 최후의 마지막 순간에야 알 수 있다. 

인생은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알 수 없다. 상황은 언제든 돌변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좋은 시절은 언제든 악화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두운 시절도 언제든지 좋은 시절로 바뀔 수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라마다 사람을 만났을 때 인사말이 다르다. 유대인들은 ‘샬롬(shalom)’이라고 인사한다. 유대인들에게 샬롬이라는 인사는 단순히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아니라 ‘당신의 모든 삶(내적, 외적, 물질, 관계)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온전한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탈무드는 완전한 평화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복(blessing)이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이 평화의 원천인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평화이고 모든 것이 평화 속에서 하나로 묶인다.

그러나 우리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는 것은 많다. 물질 명성 지식 소유 자녀 등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일시적 평화와 행복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들은 깨지기 쉬운 것들이다.

탈무드는 인간이 노력으로 구할 수 있는 행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뚜렷이 구분하여 인간이 노력하여 얻는 것은 가변적인 행복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영원하고 불변의 행복으로 간주한다.

흥미로운 점은 서양 문명의 두 축을 형성하고 있는 그리스 전통과 유대 전통이 바라보는 행복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리스 전통은 대체로 우리가 아는 행복, 즉 인간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강조한다. 유대 전통의 행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행복을 구하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 어떤 사람은 사업을 통해서 행복을 구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공부를 통해서 행복을 구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소유를 통해서 행복을 구한다. 

사람이 노력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물질 지위 명성 지식 등이 어느 정도 행복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그런 것을 추구해야 할 이유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늘 변화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변화하지 않는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한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나의 영혼 관리이다. 그 영혼 속의 행복은 목적지(결과)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로 가는 수많은 간이역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간이역들을 너무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 간이역들은 노력 과정인 것이다. 

행복은 저만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열심히 달려가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고노스케 파나소닉 창립자는 못 배우고 병약하고 가난하게 태어난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배우기 위해 더욱 노력했고 건강을 위해 더 준비하였으며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더 성실한 생활을 하였는데 그 과정을 행복으로 보았다. 

행복은 가치있는 일에 열중하는 매 순간 얻어지는 것이다.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도 행복할 수 있다. 

미래를 뜻하는 ‘언제가’의 ‘someday’는 monday(월요일)부터 sunday(일요일)안에 없다. 지금 재미있고 행복해야 미래도 재미있으며 행복해질 수 있다고 유영만 작가는 말한다. 결국 행복은 결과보다 과정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1위는 모래성을 막 쌓은 어린이, 그리고 2위는 아기 목욕을 시켜 몸에 분을 발라주며 웃는 어머니였다. 

행복한 사람의 상위 순서에 재벌이나 귀족, 박사는 없었다. 장수하는 행복이나 높은 지위에 오르는 행복 그리고 재산을 모으는 행복보다는 오히려 사소해 보이지만 순수한 마음의 부자가 행복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행복을 뜨거운 열복(熱福)과 맑은 청복(淸福)으로 나눈다. 열복은 대단한 성공과 출세로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화끈한 행복이고, 청복은 정신적인 만족을 아는 청아한 삶에서 나오는 행복이다. 

서양의 행복은 행운이 있어야 복이 오는 것이지만, 동양은 ‘쾌족(快足)’으로 행운이 없어도 나의 뜻을 성실히 하면 마음이 상쾌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의 쾌족이 행복보다 한 수 위이다.

※ 본지에 게재되는 모든 외부기고 논조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0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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