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현 원 명 본지 객원 컬럼위원 |
| ⓒ 횡성뉴스 |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일이다.
심재(心齋)는 마음을 재계(齋戒)하는 것으로 내 뜻을 언어를 통하여 귀로 전달하지 말고 마음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氣)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것 만에만 반응하고 귀는 불완전한 청각에 의존해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기(氣)의 소통으로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과 소통하는 것이 심재이다.
내 마음을 비우고 소통하면 상대방도 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상대방이 내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그쳐야 한다.
당신 마음이 내 마음이다. 도덕경 49장에 성인무상심(聖人無常心)이 있다.
성인(聖人)은 항상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마음인 상심(常心)이 없다. 상심은 고정된 마음,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아집 고집 편견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모두 부정하고 욕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특히 모든 방향으로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리더는 사람들의 다양한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삼는 사람이다. 내 고집과 아집을 버리면 모두를 얻을 수 있다.
평정심이란 나를 지키는 마음의 힘이다. 그 힘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정신의 안온함을 갖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근심이 없고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에서 족히 5분에서 10분 정도는 평온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일순간 갑작스런 위기상황이 닥치면 평정심은 바로 무너져 버린다.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일상에서 복잡한 일,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 일들을 접했을 때 이것은 자신을 단련시키는 트레이너로 생각한다면 평정심에 이르는 길이 좀 더 즐거워질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수오재기(守吾齋記) 글에서 나 자신을 잡기란 참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마음이 내 몸에 붙어있어서 당연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오고 가는데 일정한 법칙이 없다.
잠시 살피지 않으면 어디든지 못 가는 곳이 없는 것이 마음이다.
항상 고요히 혼자 있을 때 마음속에 정갈한 유리그릇 하나를 연상하고 그 속에 물이 가득 담겨 있다고 연상해보자. 그리고 그 물이 흩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삶이 바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삶이라고 그는 표현했다.
남의 불행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어린이의 사진을 보고 가슴이 찡해지거나 고통에 빠져 절망하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착한 본성 때문이다.
맹자는 이런 인간의 마음을 불인지심(不忍之心)이라고 하였다. 남의 불행을 차마 보지 못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선한 마음이다.
인개유불인지심(人皆有不忍之心)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의 불행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한 불인지정(不忍之政)을 펼쳐야 한다. 백성들의 불행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 리더의 이상적인 정치이다.
오늘날 현대인의 마음 현주소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인생은 신체 크기보다 마음의 크기 즉 자신감과 집중력의 싸움이다.
헤비급 세계챔피언을 지낸 이반더 홀리필드는 “권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체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지닌 마음의 크기이다.”라고 말했다.
인생도 덩치와 파워가 아니라 마음 상태이다. 몸을 단련해 육체의 근육을 키우듯, 역경에 의연히 대처하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강한 마음의 힘이 중요하다. 외유내강, 겉으로는 부드러우나 마음은 강하고 굳세어야 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마음을 내라!” 외부의 마음에 흔들리지 않으면 장애가 없어진다.
달아나는 마음에 따르지 말고 그 마음의 주인이 되라. 머무는 곳 없이 마음을 내라. 머물면 분별심 차별심이 나서 괴롭게 된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무엇으로 보는가? 눈으로 보는가 마음으로 보는가? 이미 눈과 마음은 욕망, 분별심, 악으로 물들어 있다.
태어날 때의 청정한 마음인 본성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본래의 마음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진정한 공부를 해야 한다.
※ 본지에 게재되는 모든 외부기고 논조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